매년 부처님오신날이면 사찰 안팎에 형형색색의 연등이 붉을 밝혀 부처님오신날을 기린다. 그럼, 연등은 언제부터 달았고, 어떤 변화를 겪어 왔을까? 불기 2559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연등의 유래와 의미, 변천과정에 대해 살펴봤다. 편집자

 

     
▲ 시대에 따른 연등의 변천. 사진 왼쪽부터 1969 1971 1986 1989년 부처님오신날 조계사 풍경이다. 주름등, 팔모등, 연꽃등, 비닐등이 걸려있다.

등(燈)은 부처님에게 올리는 여섯 가지 공양물 중 하나다. 여섯 가지 실천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육바라밀 가운데 ‘지혜’를 상징한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불을 밝히는 등은 어리석음과 번뇌를 물리치고 영원한 진리의 광명을 밝히겠다는 서원을 담고 있다. 온 세상이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로 충만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스승이 제자에게 진리를 전하고 그 가르침을 이어가는 일을 등불[法燈]에 비유하기도 한다.

등 공양의 유래
〈현우경〉에 기록된 등불의 유래를 살펴보면 “부처님 당시 아사세왕이 기원정사에서 부처님께 법문을 청해 들을 때 동참한 모든 불제자들이 기름 등불을 켜서 법회장을 밝힌 데서 유래된다. 이때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은 많은 사람들이 등불 공양을 올려 공덕 쌓는 것을 보고, 자신도 복을 쌓고 싶었으나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복 인연을 맺을 수 없음이 안타까워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서 기름을 구해 불을 밝혔다. 새벽이 되어 모든 불이 꺼졌으나 난타의 등불은 꺼지지 않고 밝게 타올랐다. 부처님께서 주무시지 못할 것을 염려해 아난존자가 등불을 끄려했을 때도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이를 본 부처님께서는 “그만두어라. 아난아. 그 등불은 가난한 여인이 간절한 정성으로 켠 것이므로 너의 힘으로는 끌 수 없다. 그 여인은 이 공덕으로 오랜 세월이 지나 수미등광여래가 될 것이다”라며 수기(受記)를 내려준다”고 한다. 이를 일러 ‘빈녀일등(貧女一等)’의 일화라고 하는데, 이때부터 큰 원력을 세운 사람은 부처님전에 지극정성으로 등을 밝히면 무량한 공덕을 입을 수 있다고 전해진다.

역사 속 연등
전기가 없던 시절, 집 안팎에서 사용하던 등과 구분해서 불교에서는 ‘연등’이라 칭했다. 이 연등은 특히 부처님오신날을 축하하고 공덕을 짓기 위해 불단에 올렸다.

그럼, 연등은 어떻게 변화했으며 어디에서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있을까? 한국전통등연구원 백창호 대표는 “연등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그 모습도 변해왔다. 삼국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는 남아있는 문헌의 기록을 통해 연등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지만 근대이후 등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아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근대화 과정에서 등문화가 어떻게 변천했는지 살펴보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일제강점기는 민족문화 말살정책이 등문화에도 영향을 끼쳐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연등의 역사는 통일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경문왕 6년(866년) 정월 15일과 진성여왕 4년(890년) 정월 15일 왕이 황룡사로 행차해 연등을 간등(看燈)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등의 형태를 보여주는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중 성종대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나라 풍속에 이날은 석가의 탄신일이라 하여 집집마다 등불을 켜 놓는다. 장대를 많이 세우고 수십 개의 등을 연이어 다는데 새ㆍ짐승ㆍ물고기ㆍ용의 형상으로 등을 만들어 대단히 호화롭게 꾸미므로 구경하는 사람이 많이 모여든다”고 적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외에 유학자들의 시문 또는 〈동국세시기〉 같은 세시풍속지에도 다양한 등의 이름이 등장한다. 특히 〈동국세시기〉에는 모양과 재질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등의 이름에는 수박등ㆍ마늘등ㆍ연꽃등ㆍ칠성등ㆍ오행등ㆍ일월등ㆍ공등ㆍ배등ㆍ종등ㆍ복등ㆍ누각등ㆍ난간등ㆍ화분등ㆍ아마등ㆍ머루등ㆍ병등ㆍ항아리등ㆍ방울등ㆍ알등ㆍ봉황등ㆍ학등ㆍ잉어등ㆍ거북등ㆍ자라등ㆍ수복등ㆍ태평등ㆍ만세등ㆍ남산등이 있는데 모두 그 모양을 상징하고 있다. 등을 종이로 바르기도 하고 붉고 푸른 비단으로 바르기도 한다. 운모를 씌워 비선과 화조를 그리기도하고, 평평한 면마다 모가 진 곳마다 3색의 둘둘 만 종이나 길쭉한 쪽지 종이를 붙이기도 한다. 그리하여 펄럭이는 모습이 매우 멋있다. 북등에는 장군이 말을 탄 모양의 삼국의 고사를 그렸다.”
그 밖에 〈열양세시기〉, 〈경도잡지〉에도 등놀이의 형태와 등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다.

백창호 대표는 연등의 변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건 ‘산업화’라고 꼽았다. 1970년대에 들어 산업화가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편리성을 추구하게 됐고, 이에 따라 등의 모습도 변화를 겪는다. 1960년대 중반부터 수박등과 종이 초롱등이 사라지고, 1970년대에는 팔모등ㆍ연꽃등ㆍ종이주름등ㆍ비닐등이 주로 사용된다. 특히 공장에서 생산한 연꽃잎으로 접은 등이 대중화됐다. 골조도 대나무나 싸리나무 대신 철사를 이용해 만들어졌다. 1980년대 이후 1990년까지는 관련 기술이 향상돼 공장에서 제작한 철사를 구입해 조립하도록 변했다. 90년대 초부터 종이 팔모등도 사라지고 공장에서 제작한 인쇄 팔모등지가 등장한다. 필름 팔모등이나 비닐 만월등을 도량등으로 길게 줄을 매서 달고, 법당에 1년 등을 다는 풍속도 시작됐다. 2000년대는 등 문화의 최대 변혁기다. 팔모등도 주름을 잡아 이동과 보관이 편리하게 만들었다. 등을 씌우는 겉 재료는 색깔을 넣어 염색한 색 팔모등지가 등장했다. 또 도량과 법당에 수백 수천 개의 등을 만들어 달려면 많은 인력이 필요해 공장에서 제작한 등을 구입해서 쓰거나 공단으로 제작한 연등을 사용하게 되었다. 특히 2002년 한ㆍ일 월드컵을 전후로 창작등이 대거 선을 보인다. 연등행렬에 쓰기 위한 각종 형상등을 비롯해 법당에는 창의적인 등을 만들어 장엄하는 풍속이 나타났다.

연등의 변천
등은 이렇게 재료나 색상, 제작방법 등 여러 면에서 다양한 변화를 겪어왔다. 우선 제작방법에서 공장등을 구입해 사용하던 관습에서 손수 등을 제작하는 사례가 늘고, 등을 만드는 재료의 변화, 등의 종류와 모양을 다양하게 바꾸어 창작등을 선보이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백창호 대표는 “등을 만드는 소재의 측면에서 변화가 가장 많이 일어났다. 전통등 뼈대는 대나무나 싸리나무로 만들고 겉은 한지를 바르는 형태였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철사를 이용해 등살을 만들고 종이나 천, 비닐을 사용한다”며 “한지는 비를 맞으면 쉽게 찢어지므로 헝겊이나 비닐을 사용한다. 편리성과 효율성이 가져온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친환경 소재가 불편함을 이유로 밀려난 셈이다.

그 뿐만 아니라 등을 밝히는 심지도 예전의 기름등잔이나 양초 대신 전구를 사용한다. 전구의 종류도 필라멘트전구에서 최근에는 전구의 수명이 길고 전력소모가 적은 LED전구로 교체되고 있다. 등을 만드는 재료의 변화는 공단등과 비닐등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각 사찰에서 초파일 연등에 많이 사용하는 등의 재료는 합성섬유로 된 공단이나 갑사를 이용해 만든 등이 70%이상을 차지한다. 그 다음이 비닐등인데 도량에 비닐등을 많이 다는 이유는 가격이 저렴하고 비바람에 잘 견디는 내구성 때문이다. 법당은 비에 젖을 염려가 없으므로 정성을 들여 한지로 등을 만들어 불전에 올리는 공양등을 쓴다. 종이로 제작한 등을 도량에 걸 때는 비에 젖지 않도록 겉에 투명비닐을 씌운다.

등의 제작도 전통적인 방법으로 신도들이 직접 만들기보다 공장에서 제작한 등을 구입하는 것으로 대체됐다. 연등을 직접 제작할 때 소요되는 시간과 인력이 구입비용보다 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신도들이 모여 앉아 연꽃잎을 말고 연꽃등을 만드는 모습은 점점 사라지게 됐다. 결국 등을 구입해 사용하고, 제작하더라도 이미 공장에서 제작한 부속을 구해다 조립해 사용하는 것이 일반이다. 
 
수박등·마늘등 포함 24종 재현

 

     
▲ 복원 계승되는 전통등. 위에서부터 연꽃등, 수박등, 마늘등.

우리 조상들은 쓰임에 따라 등의 모양과 재료를 달리했다. 부처님오신날과 같이 특별한 날에는 등이 더 다양해진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각자의 소망과 서원을 담아 나만의 등을 만들어 밝히기 때문이다.

연등회보존위원회는 등을 복원 전승하기 위해 1996년부터 지속적으로 전통등 재현운동을 전개해 사라져 간 전통등이 상당수준 복원 전승됐다. 현재 복원된 등은 연꽃등ㆍ팔모등ㆍ수박등ㆍ초롱등ㆍ마늘등을 포함해 총 24종이 있다.
연꽃등은 원등이나 팔모등에 연꽃잎을 붙여 만든 형태다. 연꽃잎은 재단 염색한 종이를 촉촉하게 적셔 대나무통에 두르고 실이나 낚싯줄로 감아 일정한 시간 동안 누름판으로 누른 뒤 풀어내면 주름 잡힌 모양이 나온다. 이것의 끝 부분을 실로 묶어 등 틀에 차례로 붙이면 등이 완성된다. 연꽃등은 주로 초파일에 불단 공양등으로 쓰고 초파일 행렬등과 장엄등으로 쓴다.

팔모등은 철사로 등 틀을 만들고 겉을 싸는 종이를 붙인다. 겉에는 붓글씨로 범서ㆍ卍ㆍ佛자를 쓰거나 색종이를 오려 붙이고 모퉁이에 귀불을 오려 붙여 장식한다. 등 아래쪽에 굽을 달아 땅바닥에 내려놓을 때 안정감이 들도록 만들기도 한다.

수박등은 〈동국세시기〉에 등장하는 오래된 등이다. 수박은 한 줄기에서 여러 줄기를 뻗어 열매를 맺어 자손번창과 장수의 의미를 갖는다. 수박등을 만드는 기법은 둥근 테 6개를 4개의 둥근 옆면과 위아래 2개의 원을 포함해 모두 6면의 원에 종이를 바른다. 그러면 수박의 단면을 잘라 놓은 형상이 되는데, 여기에 빨강색을 칠하고 검은 씨를 그린다.
초롱등은 촛불이 바람에 꺼지지 않도록 외피를 씌운 옥외용 제등이다. 초롱등에는 지초롱ㆍ사초롱ㆍ조족등ㆍ북등이 있으며, 형태는 사각육면체ㆍ육각팔면체ㆍ팔각십면체가 있다. 사각육면체가 일반형이다. 위쪽으로 화기가 빠지도록 투공을 내고 손잡이는 대나무나 가는 나무로 만든다. 등을 만드는 재료는 구리ㆍ철사ㆍ대오리ㆍ나무ㆍ수수깡으로 틀을 만들고 안쪽 바닥 중심에는 초꽂이를 부착한다. 초롱의 가장 흔한 형태는 지초롱과 사초롱이다. 지초롱은 표면을 흰 한지나 기름먹인 유지로 바르고 염색을 하지 않으면 위아래에 색지를 붙여 쓴다. 사초롱은 갑사를 길쭉하게 재단해 자루형태로 만들어 씌운다.

마늘등의 형상은 기하학적으로 단순하면서도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위쪽이 좁고 가운데 배가 불룩 나오며 아래쪽이 좁아드는 비대칭의 등이지만 4각 6면체 기본형에 변화를 줘 4각 10면체를 연출한다. 마늘등의 면에는 화조·잉어·문자 등 여러 가지 문양을 색종이로 오려붙이거나 그려서 등을 만드는 의미를 부각시킨다.

그 밖에도 자연계에 있는 사물의 각종 현상을 본떠 만든 형상등도 오늘날 복원해 제작하고 있다. 형상등의 소재로 쓰인 동식물ㆍ천체ㆍ물건ㆍ문자들이 가진 의미는 모두 수명장수나 복을 기원하는 상서로움의 의미를 담고 있다.

     
▲ 왼쪽부터 1995 2001 2005 2008년 조계사 부처님오신날 모습. 비닐등과 팔모등, 비닐 만월등 창작형상등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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