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스님, 부처님오신날 즈음해서는 사찰뿐만 아니라 거리에도 연등이 걸리기 시작하는데요. 부처님오신날 이렇게 연등을 공양하는 이유와 유래가 궁금합니다.

답 : 연등공양의 유래는 아사세왕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사세왕이 전쟁으로 많은 생명을 뺏고서는 온 몸에 종기가 돋아 고통스러워했다고 해요. 치료는 되지 않고 본인은 아프고,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러다가 부처님 말씀에 감화를 받고 불법에 귀의해 참회 기도를 하고 나니 종기가 말끔히 나았답니다. 그래서 기쁜 나머지 자주 부처님 모시고 공양을 올리고 설법을 들었다고 해요. 그때 감사의 뜻으로 궁에서부터 부처님이 주석하시던 기원정사까지 수많은 연등으로 불을 밝혔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연등 공양이 불자들에게도 널리 퍼져 지금에 이른 겁니다.
연등 공양의 공덕에 대해서는 경전에서도 두루 찾아볼 수 있는데요. 〈등지인연경〉이라는 경전에 보면 ‘등불 하나하나가 수미산 같고 등유는 넓은 바다와 같으므로 등 공양은 모든 공양구 가운데 으뜸’이라고 등 공양의 공덕을 칭송하고 있어요. 〈불설시등공덕경〉이라는 경전에도 연등 공양의 공덕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요.
‘불탑과 부처님 전에 등을 밝혀 올리면 그로 인해 항상 안락한 경지를 누리게 되며 죽은 후에는 33천에 태어나고 청정한 소리, 뜻에 맞는 권속들을 만나는 다섯 가지 청정을 얻는다’고 했어요.
또 〈화엄경〉 ‘입법계품’에서는 ‘등불의 심지는 믿음이고, 기름은 자비심이며, 등잔 그릇은 염불심, 불빛은 공덕심이므로 자비심을 염불하는 마음의 등잔에 담아 마음의 심지에 불을 붙이면 그 공덕이 빛이 삼독심을 녹이고 어리석은 마음을 밝혀준다’고 연등 공양의 공덕을 밝히고 있죠.
가난한 여인의 등불 이야기는 아마 많이 아실 거예요. 부자들이 기름을 넉넉하게 넣고 화려하게 치장한 등불 공양은 밤이 지나가기 전 꺼졌지만 가난한 여인이 아주 조금의 기름으로 간신히 불 밝힌 초라한 등불은 아침이 올 때까지 고요하게 타올랐다고 하죠. 모진 바람에도 안 꺼지고 타는 등불을 보고 아난존자가 불을 끄려고 했지만 안 꺼졌다고 해요. 신통력까지 동원했지만 실패했죠.
부처님께서는 아난 존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 불은 간절한 원이 담겨 있기에 너의 신통으로는 끌 수가 없다고요. 간절한 발원이 담긴 공양은 그 공덕 또한 커집니다. 여러분도 간절한 발원을 하시면서 연등 공양을 하시기 바랍니다.

문 : 스님, 부처님오신날 저도 절에 가서 관불의식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태어나시자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외치셨다고 하는데, 어떤 뜻인가요? 그리고 부처님은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신화 같은 탄생 이야기도 들었는데, 정말 사실인가요?

답 : 부처님께서는 옆구리에서 태어나시고 태어나자마자 걸으시고, 바로 말씀도 하시죠. 하나씩 설명해드릴게요. 우선 옆구리에서 태어나셨다는 신화적인 탄생을 계급론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당시 부처님은 인도 사캬국의 숫도다나왕의 아들로 태어난 싯다르타 왕자죠. 왕족은 ‘카스트라’는 인도의 계급 제도에서는 두 번째인 크샤트리아에 해당되는 신분이었어요.
힌두교의 고전인 리그베다 문헌에 의하면 사제계급인 브라만은 브라흐만 신의 정수리에서 태어나고, 왕족이나 무사가 속한 크샤트리아는 브라흐만 신의 옆구리에서 태어나고, 평민인 바이샤는 브라흐만 신의 허벅지에서 태어나고, 노예인 수드라는 브라흐만 신의 발바닥에서 태어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어머니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부처님의 출신 성분이 크샤트리아 계급임을 상징하는 것이죠.
또 부처님께서는 연꽃이 피어나는 자리로 일곱 걸음을 걸으십니다. 여기에는 어떤 뜻이 숨어있냐면요.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깨닫지 못하면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 삼계 육도를 윤회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일곱 걸음을 걸으심으로 육도 윤회를 벗어나 삼계에서도 벗어난 존재라는 걸 보여주신 겁니다.
일곱 걸음 걸으신 뒤에는 오른손을 높이 들어서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 말씀하셨다고 하는데요. 한문 경전에서 전하는 탄생게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가 전체예요. 뜻을 살피면 “하늘 위와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도다. 삼계가 모두 고통에 헤매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라는 내용인데요. 빨리어로 전하는 초기경전 디가니까야에서는 내용이 조금 다릅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님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님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선구적인 님이다. 이것은 나의 최후의 태어남이다. 나에게 더 이상 다시 태어남은 없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한 건 깨달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깨달음을 얻어 존귀한 내가 깨달음을 얻게 될 존귀해질 모든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겠다는 선언이죠. 초기경전에는 여기에 더해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다.’고 하여, 윤회에서 벗어난 존재임을 더욱 강조하고 있죠. 이미 일곱 걸음 걸으셨다는 표현에서 육도윤회에서 벗어났음을 상징으로 보여줬지만 초기경전에서는 말씀으로써도 선언 하셨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신화 같은 이야기이지만 부처님 탄생설화에는 당시 시대상황과 불교라는 종교의 목표와 가치가 다 담겨 있어요. 그러니 옛날이야기 읽듯 가볍게 받아들이지 마시고 그 안에 숨겨진 의미들을 잘 곱씹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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