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 후 카필라성 돌며 탁발로 평등의 도리 설해

부처님은 마가다에서 여러 외도들을 지혜로써 항복시킨 뒤에 다섯 산으로 둘러싸인 도성을 떠나 아버지의 나라 카필라바스투로 향했습니다. 무려 천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카필라바스투에 이르자, 두고 온 나라와 부모와 그 동족들에게 은혜를 갚을 마음이 생겼습니다.
성자 부처님이 귀국한 기쁜 소식을 제관과 대신들이 듣고 기뻐하면서 존귀한 왕께 아뢰었습니다. 자신의 아들, 부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들은 왕은 기쁨에 가득하여 도성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급히 맞이했습니다.
범천과 같은 모습으로 중앙에 앉아 제자들에게 둘러싸인 부처님을 보고 왕은 수레를 버리고 걸어서 가까이 갔습니다. 급히 그의 곁으로 다가가서 부처님을 보고 말문이 막혀서 아들이라고도, 비구라고도 부르지 못했습니다.
비구의 모습을 한 아들을 보고 나서 자신의 몸에 있는 장식들을 살피니 긴 한숨과 눈물 사이로 침울한 탄식만 새 나올 뿐이었습니다. 목마른 나그네가 물 없는 연못을 보듯 넋을 잃고 곁으로 가서 힘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임종에 이른 사람에게는 친근한 자의 모습도 그림처럼 보이듯이 아들의 모습을 보고도 기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왕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태초에 만다왕과 같이 많은 산에 둘러싸인 대지를 가지고 인드라에게도 무엇 하나 구할 것 없는 나의 아들이 걸식으로 산다. 수미산보다 수승하고 태양보다 밝고 달보다 빛나고 코끼리 보다 안정된 걸음걸이의 뛰어난 나의 아들이 걸식으로 버티어 나가고 있다.’
그 때 부처님은 왕의 마음을 알고 왕과 모든 중생들을 가엾게 여겨 하늘로 날아올라 신통을 보였습니다. 태양의 수레를 손으로 잡고 바람의 길을 따라 걸으며 한량없는 분신을 보였습니다.
땅 속에 걸림 없이 들어가기를 물과 같이 하고 물위를 걷기를 땅 위인 듯하며 한량없는 분신을 보였습니다. 반신은 비를 내려 물이 되고, 반신은 불이 되어 타올랐습니다. 산은 붉게 타 지상을 태우니 허공 가득 불빛이 넘쳤습니다. 그같은 자재한 위력을 본 왕의 마음이 환희로 가득 차오르니 다시 태양 같이 공중에 앉아 백성을 지키는 왕을 위해 법을 설했습니다.
“백성의 수호자시여, 나를 보고 근심하시니 당신의 그 자비심은 알고도 남습니다. 자식에 대한 그 마음 이제는 버리시고 그 마음 고요히 하여 새로운 결실을 받으소서. 자식으로 받들지 못하고, 아버지로서 받지 못한 최상의 감로법을 받으소서. 사람의 왕으로서도, 하늘의 왕으로서도 드물게 귀한 일이리니. 대지의 수호자시여, 행위의 본체와 행위가 생겨나는 곳과 행위의 결과인 재앙과 행복, 이 모든 것은 업력에서 비롯되니 세상을 이롭게 할 행위를 하십시오. 이 세상을 여실히 알면 오직 업만이 인간의 벗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 어디고 의지할 바 없이 오직 업과 더불어 가게 되나이다. 오직 업에 의지하여 천계, 지옥, 축생, 인간의 세계로 갑니다. 생명이 의지하는 바는 몸·입·뜻이므로 사람은 여러 가지 업을 짓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이 몸과 말과 뜻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지극한 고요함으로 다스리소서. 이는 스스로를 위함이니 남을 위함이 아닙니다. 세계는 물결치듯 움직이는 것이니, 기쁠 것도 즐거울 것도 없습니다. 업이 모두 다하여 최상의 복락을 얻도록 하소서. 하늘에서 별이 돌듯이 세간의 모든 것은 윤회합니다. 신들도 절정에 이르면 천상에서 떨어지리니, 어찌 인간의 생존을 믿을 수 있으리오. 모든 행복 중에 해탈이 최상이니 자기 마음의 기쁨이 최상임을 알면 어느 누가 뱀과 같이 사는 굴 속에서 두려움에 가득한 행복을 바라리오. 세간은 불붙는 집과 같이 두려움으로 가득함을 알아야 합니다. 삶과 죽음의 근심을 떠난 안온하고 확고한 의지처를 구하소서. 재물이나 군사나 말과 코끼리에 의지할 것도 없이 저 그릇된 적을 타파하면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승리입니다. 고와 고의 원인과 고의 지멸과 그 지멸의 도를 아십시오. 이 네 가지를 완전히 알면 두려움과 악은 멸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이 신통을 보이시니 왕은 마음에 환희를 일으켜 그 가르침을 듣고 진리를 깨달아 기뻐 합장하며 찬탄했습니다.
“지혜를 얻으니 기쁘고, 크나큰 고뇌로부터 해탈하니 기쁘구나. 근심만을 더하는 지상의 복락을 기뻐했으나, 이제 아들의 과보를 얻고 보니 실로 기쁘구나. 재물과 명예를 버리고, 사랑하는 친족들의 기쁨도 버리고, 우리들의 사랑도 버리고 떠남이 정녕 옳았구나. 하늘의 선인, 왕족 출신의 선인들, 그들이 일찍이 이르지 못한 곳, 근심 많은 세간의 안온함을 위해서 이 길을 그대는 체득했구나. 비록 그대가 전륜성왕이 됐다고 해도, 이와 같은 신통함과 가르침을 보고 내가 얻은 기쁨을 얻지는 못했으리. 전륜성왕은 인과의 법으로 이 세상 사람들을 수호하리라. 그러나 성자인 그대는 법을 설하여 윤회의 고뇌를 없앤다. 이 신통과 승리의 지혜를 가지고 윤회의 두려움을 모두 물리친 그대는 왕의 영광은 없어도 자재함을 얻었다. 왕의 영광이란 부질없는 애욕일 뿐.”
왕은 자비의 법은 견고하며 옳은 것이라고 찬탄하며, 왕이면서 아버지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아들을 향해서 공경의 예를 올렸습니다. 사람들은 부처님의 신통력을 보고, 진리를 드러내는 말씀을 듣고 스승으로 존경하니 출가의 소망이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청년들은 과위를 얻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간직했습니다. 명예와 세속의 욕망을 돌아보지 않고 사랑하는 친족도 모두 버렸습니다. 아난다, 쇼브하난다, 크리밀라, 아니룻다와 난다, 우파난다 또한 쿤타다나와 무리의 스승이 된 데바닷타가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궁정 제관의 아들 우다인도 서슴없이 출가의 길을 나서니 우파리 또한 그 길을 따랐습니다. 왕 또한 아들의 위신력을 보고 모든 미혹을 끊고 감로의 법문에 드니 왕위를 아우에게 넘기고 궁중에 머물면서 출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부처님은 이들 착한 벗, 권속, 친족들과 눈물을 흘리면서 기뻐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성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 왕국의 태자가 목적을 성취하고 도성 안으로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집집의 남녀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구름에 가려진 태양과 같이 빛나는 가사를 입고 있는 그를 보고 여인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연꽃 같이 합장하여 정례를 했습니다. 진리와 용모가 밝게 빛나는 그의 존용을 보고 감동한 여인들은 연민과 공경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리따운 모발을 깎아 버리고 낡은 가사를 걸쳤으나 장엄한 지혜의 눈으로 걷고 계신다. 더위를 막는 흰 우산을 쓰고 보옥으로 장식한 말을 타고 높은 지위와 정복자의 권위를 누릴 태자가 지금 발우(鉢盂)를 들고 걸어가신다. 타마라 나무의 잎으로 장식한 미녀의 우러름 받으며 양산을 받친 말을 타고 가실 분이 발우를 들고 걸어가신다. 자손들의 원적을 물리치고 뭇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보관을 쓰실 그분이 육척 앞의 땅을 보며 걸어가신다. 이분은 어떤 견해를 가졌기에 어떤 이유로 어떤 것을 구하기에 놀고 즐기기를 싫어하시며 아름다운 아내마저 버리고 고행을 하실까? 뛰어난 여자인 태자비도 긴 날을 근심에 빠져 헤맸으니 탁발을 하는 남편의 소식을 듣고는 그 마음 얼마나 아팠을까? 우아하기 그지없는 태자가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아버지인 왕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또한 난폭한 외적에겐 어찌 대할 것인가? 슬퍼하며 우는 아들 라훌라를 보고도 미련 없이 애착을 버렸으니 오로지 서원을 위함이었네. 위엄 있는 안색의 영묘한 용자, 그의 걸음걸이와 안연한 움직임은 공덕으로 빛나고 적정을 갖추어 모든 감각의 대상을 떠났구나.”
여자들은 제각기 생각을 쏟아 냈으나 부처님은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 선행을 쌓지 않은 사람, 수행에 만족하지 않는 사문이나 이 모든 사람들을 가엾게 여겨 밝디 밝은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려고 아버지의 도성을 돌며 평등의 도리로 탁발을 하였습니다.

2017년, 다시 우리가 맞는 부처님 오신 날.
부처님이시여, 그 때 당신의 조국에 그와 같이 행하신 것처럼 이 땅에도 그런 축복을 내려주소서! 남북으로, 동서로,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 부모들과 그 자식들까지 분단된 이 부끄러운 나라의 불행을 잠재워주소서! 자식이 잘못되면 그 부모가 마땅히 나무라야 하며, 그 부모가 잘못되면 당연히 그 자식이 바른 길로 인도하는, 그 순연한 이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로 가게 하여 주소서! 더불어 부처님 법을 따르는 사람이나, 부처님 법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도 위없는 축복을 내려주소서!

우봉규 작가

〈황금사과〉로 동양문학상을 받은 뒤 〈객사〉로 월간문학상을, 〈남태강곡〉으로 삼성문학상을, 〈갈매기야 훨훨 날아라〉로 계몽사 아동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희곡 〈눈꽃〉이 한국일보사 공모 광복 50주년 기념작에 당선되면서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2001년과 2002년 서울국제공연제 공식 초청작 〈바리공주〉, 〈행복한 집〉 발표 이후, 우리나라 희곡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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