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은 자비심으로 모든 중생, 즉 인간 및 날고 기는 벌레에 이르기까지 어여삐 여기고 갓난아이를 대하듯 보호하여 구제하라.”

경전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입니다. 부처님은 다른 생명을 대할 때 갓난아이를 대하듯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어떠한 조건도 바라지 않는 깊은 사랑, 즉 대비심(大悲心)을 체(體)로 삼아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불교는 그래서 ‘아힘사(ahims)’를 기본사상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아힘사’는 살아있는 모든 생물을 죽이지 말며(불살생), 해하지 말고(비폭력), 동정과 자비를 베풀라는 뜻입니다. 원래 ‘해하다’, ‘죽이다’는 범어 ‘hims’에 부정접두사 ‘a’가 붙어 ‘불살생(不殺生)’, ‘불상해(不傷害)’의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힘사’의 정신은 인도에서 훗날 마하트마 간디가 ‘비폭력’이란 이름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할 때 사용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생명이 있는 존재에 대해 폭력을 휘둘러선 안 된다는 자비와 평등의 정신을 담아낸 것입니다.

요즈음,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이 보도됨으로써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학교에서의 폭력행위는 비단 부산 여중생 사건에만 국한돼 있지 않고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자행되고 있다고 하니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에까지 오게 되었는지 자괴감이 앞섭니다. 이는 분명 내 자신의 소중함만큼 다른 이의 존재에 대한 소중함을 일러주지 못한 기성세대와 교육현장의 책임이 크다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법칙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어디로나 갈 수 있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 자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는 더 없이 소중하다. 그러기에 자기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하여서는 안 된다.”

〈상응부경전(相應部經典)〉 ‘말리경(末利經)’에서 부처님이 파세나디 대왕 부부에게 들려준 게송입니다. ‘말리’는 부처님 재세 당시 코사라국 파세나디 대왕의 왕비 이름입니다. 그녀는 날마다 ‘말리’란 꽃으로 화관을 만들어 머리에 쓰고 다녔으므로 이렇게 이름 붙여졌다고 합니다. 어느 날 파세나디 대왕이 왕비에게 물었습니다.

“중전, 그대는 자신보다도 더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대왕이시여, 저에게는 저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왕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도 나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물어본 것입니다.”

부처님은 파세나디 대왕이 찾아와 두 사람의 대화를 소개하며 이것이 과연 옳은지 물었을 때 이 게송을 들려주셨습니다.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듯이 다른 사람도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여긴다.’는 게 말씀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끔찍이 아끼듯이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해코지를 하지 말라는 경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이 간과되고 있는 오늘날, 다른 이를 향한 살상과 폭력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살상과 폭력을 쾌감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 걱정이 앞서는 게 현실입니다.

불교에선 다른 사람을 괴롭힐 경우 이런 사람을 천하다고 일컫습니다. 한 마디로 다른 존재를 업신여기고 핍박을 가하면 천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잡아함경〉 4권에서는 천한 사람을 이렇게 분류합니다.

“위선을 행하며 그릇된 소견을 가진 자, 다른 사람을 핍박하고 압제하는 자, 자기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자, 바른 것을 은폐하고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을 가르치는 자, 이 모든 사람이 바로 천한 사람이다.”

즉, 이중인격자·폭력 행위자·이기주의자·사이비 교주 등이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죽어서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른 이를 올바로 이끌지 못하고 오히려 여러 가지 이유와 명분으로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자비경〉에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어떤 것이든 공포에 질린 것이나, 튼튼한 것이나, 혹은 그 밖의 긴 것이거나, 거대한 것이거나, 중간 것이거나, 짧은 것이거나, 아주 작은 것이거나, 통통한 것이거나, 보이는 것이거나, 혹은 보이지 않는 것이거나, 멀리 있는 것이거나,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이거나, 멀리 살고 있는 것이거나, 방금 태어난 것이거나, 이제 태어나려는 것이거나, 모든 중생 일체의 생물은 안락하라. 어머니가 하나뿐인 외아들을 생명을 걸고 보호하듯 일체의 생물에 대해서도 한량없는 자비의 마음을 일으켜라.”

어떠한 이유에서든 모든 생명은 그 귀천에 관계없이 보호돼야 한다는 게 부처님 말씀입니다. 하물며 괴롭힘과 폭력을 겪는 일은 결단코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더 이상 남을 괴롭히는 폭력이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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