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으로 여는 불교(268호)

어떤 집안에 3녀 1남의 남매가 있었다. 그 중 아들은 3번째였는데 어려서부터 다소 자기중심적인 응석받이 측면이 있었다. 그런 가운데 서로의 사이에 큰 문제없이 비교적 순탄하게 한 가족의 일원으로서 성장기를 보내고 각자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였고 4남매 모두 결혼도 하고 자녀도 키우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 어느 때 집안 행사가 있어 다 같이 모였을 때, 남동생이 장녀인 누나에게 성장한 이후 처음으로 갑자기 원망을 털어놓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누나의 기억에는 전혀 없는 어렸을 때의 어떤 일이었다. 느닷없는 상황에 당황한 누나는 괜히 쓸데없이 트집 잡는다고 생각되어 그냥 건성으로 들으며 기억에도 없고, 있다고 해도 다 지나간 옛날 일을 가지고 뭘 어린 아이처럼 그러냐고 나무랐다. 그러자 동생은 몹시 서운하다는 듯이 흘겨보더니 그날은 그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다른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추석에 모두 다시 만났을 때, 남동생은 이번에는 정색을 하며 어렸을 때의 그 일을 다시 거론하는 것이었다. 동생은 그때의 구체적인 정황을 제시하며 당시 누나의 반응과 말까지 복기하며 ‘그런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았냐?’고 화를 냈다. 동생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거듭 듣고 정황도 구체적으로 들으니 어렸을 때 그랬던 일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 부친이 몸이 약해 비교적 일찍 돌아가셨는데 그때 돌아가시면서 고등학생이던 장녀에게 “이젠 네가 집안을 책임져야 한다.”고 유언처럼 당부를 남기셨다고 한다. 장녀는 그래서 학교를 중퇴하고 직장에 나가 돈을 벌어 동생들을 돌보았는데 나중에 검정고시를 거쳐 야간대학의 아동복지학과를 나와 유치원을 차렸다. 어쩌면 입지전적인 인물로 자기 신념과 입장이 뚜렷하고 지려고 하지 않으며 다소 저돌적인 성품이었다.

동생이 제기한 원망은 유행하던 운동화를 신고 싶어 사달라고 했었는데, 장녀가 야멸차게 한 마디로 묵살했다는 것이었다. 그 후 모친이 어찌하여 운동화를 사주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비슷한 일을 몇 가지 더 얘기했다. 그때의 섭섭함이 거의 40년 동안 묻혀 있다가 터져 나온 셈이었다. 누나는 동생이 왜 하필 이제야 그 일을 문제 삼는지 몰랐다. 무엇이 계기가 되어 그 기억이 되살아났는지도 몰랐다.

눈물을 흘리며 언성을 높이는 동생을 보고 난감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일단 사과를 하였다. 그 일이 그렇게 서운했다면 미안하다고 하였다. 그날은 그렇게 수습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은 누나에게 3페이지에 이르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내용은 마찬가지였다. 자기한테 어찌 그럴 수가 있었느냐는 것이었고, 왜 그랬냐는 것이었다. 제대로 사과하라는 것이었다. 누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우리나라에서는 굳이 불자가 아니라도 내면의 갈등이나 고통이 탐진치(貪瞋癡)라는 삼독(三毒)에서 비롯됨을 잘 알 것이다. 동생의 내면상태는 바로 이런 것으로 꽉 차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상태의 동생은 지금 어른이 된, 사회적으로 안정된 동생이 아니라 아직 동생의 내부에 성숙되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있는 그 당시의 어린 동생이라는 것이다. 옛날의 어린 동생은 그때 하고 싶은 말이 있었겠지만 누나의 반응에 충격을 받았을 뿐 어떤 반론도 제기하지 못했다. 그런 어린 동생이 지금 어른이 된 동생의 입을 빌려 야속함을 하소연하고 있는 것이다. 8고(八苦)의 하나인 구부득고(求不得苦)로 인하여 원증회고(怨憎會苦)로 이어진 것이리라.

불교심리학의 기본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지만 사성제(四聖諦)의 진리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인도 전통의학의 원리가 되었다. 그리고 현대 심리학 관점에서 보더라도 심리치료의 가장 기본적인 프로세스이기도 하다.

심리치료 측면에서 보면 먼저 고성제는 온갖 괴로운 심리문제를 나타내는 증상에 해당한다. 여기에 생노병사(生老病死)라는 인간 존재라면 누구나 겪는 근본적, 공통적 4고(四苦)와 사람마다 다소 다른 형태, 상황으로 나타나는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 원증회고(怨憎會苦, 원한을 가진 사람이나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괴로움), 구부득고(求不得苦, 원하는 것을 구하지 못하거나 구할 수 없는 괴로움), 오음성고(五陰盛苦, 인간이 가지는 정(情)을 형성하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음에서 생기는 몸과 마음의 괴로움)를 더하여 8고가 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들이 겪는 온갖 고뇌, 번민은 어떤 예외도 없이 모두 이 범주에 포함된다. 부처님은 일찍이 녹야원(鹿野園)에서 설하신 초전법륜(初轉法輪)에서 이 진리를 밝히셨다. 이 중 현실적으로 가장 큰 괴로움은 구부득고인데 이것은 인간으로서 욕망의 대상이 그만큼 다양하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욕망이 많을수록 당연히 크고 작은 괴로움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 헛된 욕망에서 벗어나도록 부처님은 인간에 대한 자비의 심정으로 하심下心, 방하착放下著을 가르쳐주신 것이리라.

증상에는 반드시 원인[집성제]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명의라고 할지라도 원인을 밝히지 못하면 제대로 된 처방을 내리기 어렵다. 그런데 원인은 개인의 무의식(말나식, 末那識 · 아뢰야식阿梨耶識)의 어느 층에서 싹튼 것이므로 본인도 명확히 모를 수도 있고, 원인이라고 말해도 그것은 표면적인 것이고, 사실은 더 깊은 심층에 숨어있는 경우도 많음에 유의해야 한다. 이러한 무의식은 대개 영유아시기 혹은 어린 시절에 종자가 심어진 것이다. 그것은 그냥 스러지기도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내면에서 싹을 틔우고 어느덧 무성하게 자라기도 한다. 앞서 사례에서 본 동생의 경우이다.

원인을 찾아냈으면 그것을 없애어 증상이 사라지는 해탈의 길로 넘어가는 방법을 강구하고 실행하여 예후를 살피는 멸성제로 이어진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증상과 원인을 정면으로 직시하면 다양한 길 중에서 반드시 적절한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기가 혼자서는 힘들 수 있다. 왜냐하면 종자가 심어진 그 당시부터 자기 입장, 생각에만 얽매어 있기 때문이다. 자기 세계 속에서 아무리 맴돌아봐야 자기 세계에 갇혀 있을 뿐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지만 그러지 못할 때는 혼자 참구하거나 공부를 하여 자각[문제해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적용하여 경험한 효과적 방법이 내게도 맞는다는 보장은 없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아울러 어떤 일에도 반드시 상대방이 있으므로 당시 그의 긍정적 의도와 입장을 헤아려 보아야 한다. 나아가 그 일에서 새로운 의미전환(Reframing)을 하고 긍정적으로 수용하게 된다면 상대방이나 그 일 자체가 커다란 감사의 마음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그러면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벗어나게 되고 내면의 상처는 아물게 된다.

멸성제가 잘 이루어지면 이제 치료의 단계(도성제)로 들어간다. 부처님은 여기서 원칙적으로 8정도(八正道)를 가르쳐 주신다. 바로 내면의 평안을 얻기 위한 여덟 가지 길이다. 정견(正見, 바른 견해), 정사(正思, 바른 생각), 정어(正語, 바른 말), 정업(正業, 바른 행위), 정명(正命, 바른 생활), 정정진(正精進, 바른 노력), 정념(正念, 바른 마음), 정정(正定, 바른 선정)이 그것이다. 그러면 완전히 회복되고 치유된 상태에서 지혜와 자비의 새로운 삶을 누리게 된다.

난감함을 토로하며 방법을 묻는 누나에게 방법을 알려주었다.

지금 어른이 된 누나가 아니라 어릴 때의 누나가 되어 본인은 기억이 없을지라도 동생이 말하는 상황으로 돌아가 몰두하여 역시 어린 그때의 동생에게 그 당시의 누나의 심정을 진심으로 말하라고 하였다.

본인도 동생도 아직 어린 나이라 서로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을 못했을 것이다. ‘야멸차게 한 마디로 묵살’했을 때 그 속에 말로 표현하지 못한 의도를 충분히 들려주도록 했다. 집안 상황, 거부한 이유, 못 들어준 누나의 안타까운 마음, 그때의 동생의 심정에 대한 헤아림 등.

다시 동생과 조용히 만나 그렇게 했더니 동생은 누나를 부둥켜안고 한동안 흐느끼며 비로소 오랜 상처가 씻겨내려 갔다. 용서하고 화해하여 비로소 부처님의 마음으로 돌아선 것이다. 그렇게 회향(廻向)의 길로 들어섰다.

심교준(한국NLP연구소장)

동국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일본 산노(産能)대학교 비즈니스스쿨 마케팅, 산업심리과정을 수료했다. 광운대학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남서울대 대학원 코칭학과 교수. NLP한국협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