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관세음보살(269호)

운문사 관세음보살 벽화. (사진=성보문화재연구원)

 

관세음보살님께 원하옵나니,
우리 모두 정법을 함께 듣고,
진리의 흐름에 함께하여
생각 생각 더욱 밝아져
부처님의 무생법인(無生法印)을
발하게 하소서.

의상대사 ‘백화도량발원문(白花道場發願文)’

 

서울 흥천사 42수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 지난해 초 보물 제1891호로 지정됐다. 천수천안 관음보살상이지만, 이를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천수(千手)가운데 42수만 표현했다. 고려 말-조선 초의 양식을 보여주는 불상이다. (사진=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

 

우리는 관세음보살님을 믿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이 우리 곁에 계심을 믿습니다.
두 손 모아 부릅니다. 항상 칭송하옵니다.
“자비로우셔라, 관세음보살님!”

 

중국계 금동관음보살상. 스위스 베른역사박물관 소장.

 

‘관세음(觀世音)’에서 ‘관(觀)’이란 보고 들으시는 절대자를 말합니다.
‘세음(世音)’이란 세간 중생의 음성으로,
현실의 세상에서 고뇌하는 중생의 절규입니다.
즉 관세음보살님은 자비를 본체로 하는 성자로서 중생들의 절규에 응하여,
정신상의 번뇌는 물론 육체상의 모든 괴로움도 해탈케 하여주십니다.

 

일본 국보 관음보살입상[夢違観音]으로 법륭사(法隆寺)에서 소장하고 있다. 나라 시대. (사진=나라국립박물관)
관음보살·반야심경 무늬 거울. 거울의 반사면에 불교의 존상(尊像)을 선으로 새긴 경상(鏡像)이다. 백의관음보살(白衣觀音菩薩) 아래에는 합장한 동자와 무장(武將)이, 위에는 반야심경과 발원문이 새겨져 있다. 길이 9.7cm. (사진=국립중앙박물관)
투루판 토유크 석굴사원에서 발견된 관음보살도의 일부. 중앙에 오른손을 들고 왼손에 화염보주를 들고 있는 관음보살좌상을, 좌우에 합장한 공양보살상을 그렸다. 마(麻)에 채색. 크기 53.5×40.0cm (사진=국립중앙박물관)

불구의 두 다리로 5년간 기도한 후 일어나다

두 다리를 다쳐 불구가 된지 오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앉은뱅이로 사는 그가 하루는 땅을 기다시피 하면서 연못가로 가서 꽃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연못 아래 땅 속에 묻힌 작은 보살상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가 두 손을 뻗어 보살상을 꺼낸 후 진흙을 씻어내고 보니, 자기로 만들어진 그 보살상은 바로 관세음보살이었습니다. 그는 보살님을 모시고 집에 돌아와 불단을 차리고 정성스럽게 모시고 매일 아침 예불을 올렸습니다.

힘든 몸이지만 하루도 빼지 않고 관세음보살을 염하기를 5년이 지난 어느 날, 꿈속에 한 노파가 나타났습니다. 그 노파는 앉은뱅이의 다리를 두드리며 안마를 해주더니 소리를 질렀습니다.

“일어나라!”

“내가 어떻게 일어선단 말이요?”

노파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괜찮다. 너는 오늘부터 걸을 수 있다!”

앉은뱅이가 문득 눈을 뜨니 그것은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몸을 부스스 일으키자 그는 보통 사람처럼 일어날 수 있었고,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산에 들어가 절을 짓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이후 많은 사람이 그 기적을 보고 절을 찾아와 관세음보살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각세경설증(覺世經說證)〉

중국 사천성 낙산의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

만약 무량 백천만억 중생이 있어 온갖 고뇌를 받음에
관음보살이 있음을 듣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른다면
관세음보살이 그 음성을 관하고 모두 벗어나게 하리라.
만약 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수지하고 있는 자는
설사 큰 불 속에 들어간다 해도 불이 능히 태우지 못하니
이 보살의 위신력 때문이며, 만약 어떤 중생이 있어
관세음보살을 공경 예배한다면 얻는 복이 헛되지 않으리라.
그러므로 중생은 관세음보살 명호를 수지해야 하느니라.

〈성관자재보살108명경(聖觀自在菩薩一百八名經)〉

당나라 초기 관세음보살 벽화. 돈황 막고굴 57번 동굴.

고된 수행으로 피를 토하니, 관음보살이 나타나 감로를 주시다

송나라 때 천태종(天台宗)의 제12조(祖) 의통(義通) 대사의 문하에 준식(遵式)이라고 하는 선사가 있었습니다. 그의 모친은 일찍이 지성으로 관음에게 기도하여 아들을 낳고 스님으로 출가시켰습니다. 스님은 학문이 높고 깊었으며, 능히 고행을 감내하는 수행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90일의 기한을 정해놓고 관음기도를 하다가 피를 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죽음으로서 서원을 하고 전혀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홀연히 꿈에서 백의관음이 나타나셔서 손으로 스님의 입을 벌리고 입에서 벌레 몇 마리를 잡아냈고, 또 손가락 끝에서 감로를 흘려 입속에 넣어주셨습니다. 몸과 마음이 너무도 청량하고 시원하였습니다. 이에 스님의 오래된 질병이 완전히 치유되었으며, 그 후로 더욱 참회하여 머리가 위로 한 치 이상 커졌고, 두 손은 무릎을 지나 아래로 내려갔으며, 소리는 종소리 같이 쨍쨍 울리는 등 여러 가지가 이전과 달라졌습니다.

대중들은 모두 스님을 찬탄하고 흠모하였습니다. 스님은 사찰의 건물들을 확장시켜 승방 수백 칸을 건축하였으며, 매번 기둥을 하나 더 세우거나 기와 한 장을 더 덮을 때는 반드시 친히 관세음보살을 소리 내어 염불하였습니다. 세 차례나 도적떼의 난동으로 저질러진 화재에도 스님이 직접 나서서 화재 진압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두 스님의 큰 원력이 견고한 덕이었습니다.

천태학을 중심으로 죄업을 참회하기 위한 참법(懺法)을 제정하여 가르쳤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스님을 자운참주(慈雲懺主)라 하였습니다.

〈송고승전(宋高僧傳)〉

스리비자야 제국(Srivijaya, 동남아시아 초기 국가) 때의 관세음보살. 태국 방콕국립박물관 소장.
명상하는 모습의 관세음보살 좌상. 간다라, 3세기. 일본 도교 마쓰오카박물관(松岡美術館) 소장.

부처님께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80항하사처럼 많은 국토를 지나서 어떤 국토가 있는데, 그곳의 중생들이 광명을 잃고

큰 곤란과 괴로움을 겪고 있구나. 누가 공덕을 세울 것인가?”

이때에 응성보살(應聲菩薩)이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시방세계는 모두 부처님께서 건립하시어서 천상과 인간세계가 끊이지 않사옵니다.

곧 길상보살(吉祥菩薩)과 함께 의논하여 세상을 위하여 해와 달을 만들어 주겠습니다.”

그리하여 응성보살은 해를 만들고, 길상보살은 달을 만들었습니다.

그 응성보살이 바로 관세음보살이고,

길상보살이 바로 대세지보살(大勢地菩薩)이었습니다.

일본 담산신사(談山神社)에 소장된 고려 수월관음도. 비단에 채색.크기 109.5×57.8cm. (사진=성보문화재연구원)

바닷물에 빠진 사람이 물고기의 도움으로 살아나다

명나라 때 유곡현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황주지방의 사람으로 항상 해외로 나가 여러 변방 나라들을 순회하였습니다. 한 번은 배가 큰 바다를 지나갈 때에 그가 실수하여 발을 헛디뎌 바다에 떨어졌습니다. 그때 배는 순풍에 돛을 달아 아주 빠른 속도로 계속 앞으로 나갔기 때문에 그를 구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원들이 돛대 위 망대에 올라가보니 멀리서 사람이 하나 파도 속에서 떴다 가라앉았다 하였지만 너무 멀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다시 살아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유곡현이 배 주변에까지 흘러왔습니다. 배 안의 사람들은 크게 환영하고 기뻐하였습니다. 화급히 줄을 던져 그를 구조하여 배위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 길이나 되는 커다란 고기 한 마리가 천천히 헤엄쳐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참으로 괴이하게 여겼습니다. 유곡현이 말하였습니다.

“바로 저 물고기가 나를 태워가지고 왔어요. 여러 차례 물속으로 미끄러져 가라앉았는데, 저 물고기가 지느러미로 나를 떠 받쳐 올렸어요. 그래서 물이 한 번도 입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배 위의 사람들은 너도 나도 물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나? 당신은 평소에 무슨 선행을 하였기에 이런 좋은 보응을 받는다는 말이요?”

유곡현이 대답하였습니다.

“평상시 저는 〈관음경〉을 지송할 뿐입니다. 그러나 한 번도 염불을 중단한 일은 없었습니다.”

〈선여당필기(善餘堂筆記)〉

목조 관음보살좌상. 고려 13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옛적에 전륜왕(轉輪王)이 있었는데 이름이 변정(遍淨)이었습니다.

태자도 있었고, 역시 보혜(寶慧)라 이름하는 대신도 있었습니다.

대신이 큰 서원을 발하여 사바세계를 제도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때에 그 태자도 대신을 따라서 중생을 함께 교화하고자 발원하였습니다.

그때의 전륜왕이 서방 아미타불이고, 태자가 관세음보살이며,

대신이 석가모니불이셨습니다.

중국 상해 옥불사의 관세음보살좌상.

<관음경>을 보시하니 병든 두 아들이 살아나다

산동성에 주화경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40세 이후에야 두 아들을 얻었으나 아이들 둘이 동시에 천연두 돌림병에 감염되었습니다. 매우 위험하였습니다. 의사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두 부부는 땅을 치며 통곡을 하였습니다. 두 부부는 하늘을 향해 말하였습니다.

“만약 애들이 죽으면 우리 둘도 애들을 따라 함께 죽을 것입니다.”

그날 밤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 말하였습니다.

“당신 부부는 사람들에게 하늘에 이르는 힘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소? 만약 즉시 〈관음경〉을 보시하면 아무 탈이 없을 것입니다.”

이튿날 아침에 두 부부는 함께 서원하였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고 모든 방편을 다 이행하겠다고 맹서하고 곧 〈관음경〉을 인쇄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돌렸습니다. 두 아들은 곧 병이 나았습니다. 이날부터 부부는 더욱 정성으로 관세음보살을 모셨고, 보시도 더욱 확대하였습니다. 후에 두 아들 모두 과거에 등과하였습니다.

〈남해자항(南海慈航)〉

몽골 울란바토르, 간단사원 관세음보살상. 높이 약 26.5m.

부처님께서 무진의보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선남자야, 만일 어떤 중생이 있는데,

부처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관세음보살이 곧 부처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며,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 · 동남 · 동녀로 제도할 이에게는

곧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 · 동남 · 동녀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느니라.

무진의야, 이 관세음보살은 이와 같은 공덕을 성취하여,

갖가지 형상으로 모든 국토에 유행하며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케 하니라.”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창녕 관룡사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 보물 1816호. 조선 후기.
서울 삼양동에서 1967년 발견된 금동관음보살입상. 높이 20.7㎝. 국보 제127호.

꿈에 관음보살이 나타나시어 심장 고질병을 고쳐주시다

송나라 때 온제라는 스님이 계셨는데, 스님은 늘 돌림병에 감염되어 헤어나지를 못하였습니다.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이에 그는 관세음보살님 성호를 염하는 수행을 일과로 삼고 매일 힘써 행하였습니다.

하루는 꿈에 한 사람이 끌을 가지고 와서 그의 가슴을 벌리고 그의 심장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손을 몇 번 문질러 주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후 스님의 고질병은 완전 치유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전에 읽은 적이 있는 모든 경전을 한 경전도 빼놓지 않고 전부 새롭게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또 붓만 들면 문장이 슬슬 나왔는데 모두들 우아하고 수준 높은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그의 변재가 모두 관세음보살님이 내리신 자비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불조통기(佛祖統紀)〉

창녕 관룡사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 보물 1816호, 조선 후기.
구인사 관음전 비치옥관세음보살상. 미얀마산 비취옥으로 조성해 2008년 5월 봉안했다. 높이 160cm, 무게 1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