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산, 그 옛 이야기(270호)

높이 1,909m. 묘향산맥의 중앙에 솟아 있는 묘향산(妙香山)은 우리나라 5대 명산의 하나이자 세계적인 명산이다. 최고봉은 비로봉(1,909m)이며, 주위에 진귀봉(珍貴峯, 1,820m) · 원만봉(圓滿峯, 1,825m) · 향로봉(香爐峯 1,599m) · 오선봉(五仙峯, 1,260m) · 법왕봉(1,392m) · 관음봉(1,120m) 등이 솟아 있다. 연주산(延州山) · 태백산 등으로도 불렸으며, 산세가 기묘하고 향기를 풍기는 아름다운 산이란 의미에서 11세기 초부터 묘향산이라 불렀다.

특히 산의 남동 기슭에 있는 보현사는 일제강점기 때 31본산 중 하나였으며, 1042년(정종 8년)에 굉곽(宏廓)대사에 의해 세워져 묘향산을 대표하는 대가람이 되었다. 대웅전 · 극락전 · 보현사 8각13층 석탑과 4각9층 석탑 등과 보현사의 연혁을 밝힌 보현사비 · 보현사중건비가 세워져 있다. 그밖에도 조계문 · 해탈문 등의 건물과 상원암 · 능인암 등의 부속암자가 있다.
 

뻐꾹 뻐꾹!

묘향산 첩첩산중은 가을 안개에 덮여 있었다.

그날도 용삼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 뻐꾸기 소리를 따라 산을 올랐다. 불치의 병으로 꼬박 삼년을 앓고 있는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묘향산 어딘가에 있다는 약초를 캐기 위해서였다. 용삼이는 그동안 산속 천지사방을 헤매며 용하다는 사람을 찾아 약을 써보았으나 모두 허사였다. 그러다가 묘향산 깊숙한 골짜기에 선약이 있다는 말을 듣고 백일 동안이나 약초를 찾아 가시덤불을 헤맸던 것이다.

용삼은 아버지의 신음소리를 떠올리며 미친 듯 산을 더듬었다. 이상한 풀을 보기만 하면 뽑아들었고, 보기가 좋은 열매는 모두 훑어서 직접 먹어보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용삼은 일찍이 와본 적이 없는 깊은 산속에 들어와 있었다. 얼굴은 나뭇가지에 찢기고, 팔과 다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용삼이의 몸은 땀에 젖고, 옷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기진맥진한 용삼은 옷자락을 늘어뜨린 채 커다란 바위 앞에서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바로 그 때였다. 어디선가 메아리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용삼아, 너의 소원이 무엇인가 말해보아라.”

“신령님!”

용삼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가 신령임을 알 수 있었다. 용삼은 마구 흘러내리는 눈물을 굳이 감추지도 않고 애원했다.

“살려 주세요.”

“네가 백날을 하루같이 지칠 줄 모르고 산속을 헤매는 것을 내가 눈여겨 보았다. 소원이 무엇인지 말해보아라.”

“신령님, 굽어 살펴주소서. 저의 아버님이 불치의 병을 얻어 죽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신령님이 아버님의 병을 고칠 약초가 어디 있는지 가르쳐 주옵소서.”

용삼은 바위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빌었다.

“너는 듣거라. 사흘 뒤 해가 하늘 한가운데 떠오를 때 쯤 맑은 하늘에 천둥이 치고 소낙비가 내릴 것이다. 그때 미리 큰 가마솥에 물을 펄펄 끓여놓도록 해라. 그래서 물이 다 끓어 잦아들 때쯤이면 서당에서 너의 아들이 돌아올 것이다. 그 아들을 가마솥에 넣고 푹 고아서 아버님에게 드리면 너의 아버님 병환은 씻은 듯 나을 것이니라.”

“아니, 신령님! 아무리 아버님의 병을 고친다고 어떻게 자식을 끓는 물속에 집어넣는단 말입니까?”

“무슨 소리! 자식은 또 낳을 수 있으되, 부모는 한 번 가면 그뿐이니 알아서 할지어다.”

“신령님, 신령님!”

용삼은 바위를 끌어안고 몸부림쳤다. 그러다가 꿈에서 깨어나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신령은 간 곳이 없었고, 나무 가지 사이로 맑은 햇살만이 쏟아져 내릴 뿐이었다.

집에 돌아온 용삼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천장만을 쳐다보았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였다.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내렸다. 용삼은 한참만에야 아내의 손목을 잡고 산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였다. 너무도 기막힌 말에 아내도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자식을 가마솥에 넣는 부모가 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내는 땅을 치며 울었다.

용삼이도 울었다.

“여보! 세상에 자식을 죽이는 부모가 어디 있겠소. 하지만 자식은 또 낳으면 되지만 아버님은 한 번 돌아가시면 다시는 만날 수 없단 말이오.”

아무 것도 모르는 일곱 살짜리 아들은 서당에서 돌아오면 엄마를 찾았고, 아내는 사흘 동안을 잠도 자지 못하고, 밥도 먹지 못한 채 지냈다. 사흘은 빨리도 지나갔다. 신령이 말한 날짜가 다가왔다. 밤에 돌아와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아들을 품에 안고 아내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 슬픈 순간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아들을 죽여야 하는 용삼이의 마음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용삼은 마음을 크게 먹기로 하였다. 용삼은 초주검이 된 아내를 간신히 타일러 신령이 말한 대로 가마솥에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하였다.

준비는 끝났다. 방안에서는 아버지의 신음소리와 아내의 통곡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용삼이는 더 이상 그 소리들 들을 수가 없어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물은 펄펄 끓기 시작했다. 여전히 안에서는 아버지의 신음소리, 아내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어우러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맑은 하늘에 번개가 치고 천둥이 쳤다. 그와 동시에 아내는 한 걸음에 부엌으로 달려 나와 용삼이에게 매달렸다. 그리고는 불을 때고 있는 용삼이의 팔을 있는 힘껏 붙잡았다.

“그만 둬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정말로 억센 힘이었다.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하면 어쩌란 말이오?”

“그렇다면 나를 죽이세요. 나를!”

아내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나 눈에 핏발이 선 아내의 얼굴을 보고도 용삼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 세상에 나를 내보내신 분은 아버님이야. 그 분을 저렇게 돌아가시게 하고 내가 살 수는 없어!”

용삼은 밖으로 뛰쳐나왔다. 천둥은 하늘과 땅을 다시 갈라놓을 듯 거세게 몰아쳤다. 곧이어 억수 같은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 때 빗속을 뚫고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엄마를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였다.

“엄마!”

“오, 아가.”

울음을 토하며 아내는 빗속을 달려 나가 어린 아들을 껴안았다.

그러나 용삼이는 어린 아들의 손목을 휘어잡았다.

“이리 오너라!”

아무 것도 모르는 아들은 엄마와 아버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아부지.”

“안 돼. 안 돼!”

아들은 그제야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파악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날 죽여요! 날!”

용삼은 어린 아들을 부둥켜안고 부엌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솥뚜껑을 열고 펄펄 끓는 물속에 아들을 집어넣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끔찍한 일이었다. 자지러지는 어린 아들의 울음소리를 마지막으로 천둥도 소나기도 눈 깜짝할 사이에 그쳐버렸다.

세상은 다시 조용해지고 용삼과 아내는 부엌에 엎어진 채로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용삼은 아버지를 위하여 사랑하는 아들을 죽인 것이다. 용삼과 아내는 죽은 사람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늘에서 내리는 천벌을 받는 것뿐이라고 여겼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이 지나갔을 것 같은 고요가 집안을 감싸고 돌았고, 방안에서는 다시 아버지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하늘 아래 일어나서는 안 될 끔찍한 비극이 부엌에서 일어났다는 것도 모르는 채.

그런데, 바로 그 때였다.

“아부지 엄마, 서당에 다녀왔습니다.”

용삼과 아내는 똑같이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며 벌떡 일어났다.

“아니!”

조금 전에 펄펄 끓는 가마솥에 집어넣은 아들이 살아 돌아오다니. 용삼과 아내는 할 말을 잃고 두 손을 맞잡았다. ‘혹시 저승으로 가버린 아들의 넋이 너무도 원통하여 다시 돌아온 것인가?’하고 생각했다. ‘이제야 하늘에서 천벌이 내리나보다.’ 짐작했다.

용삼과 아내는 아들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었다.

“엄마, 왜 그래?”

그런데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 품을 파고들었다.

“아이고, 내 새끼!”

용삼의 아내는 아들을 껴안고 소리 높여 울었다. 그 순간 용삼이의 머리를 스치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용삼이는 쏜살같이 부엌으로 뛰어가 가마솥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끓는 물속엔 커다란 산삼 한 뿌리가 익어가고 있었다. 용삼이는 기쁨의 눈물을 흘릴 여유도 없었다. 안방에서 아버지의 숨넘어가는 신음소리가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용삼이는 산삼을 들고 아버지 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움직일 힘도 없는 아버지를 일으켜 산삼을 먹였다.

산삼 한 뿌리를 다 먹은 아버지는 그 날로 거짓말처럼 병이 나았다.

“여보 그러기에 신령님 말씀을 듣자고 했지 않았수.”

“당신의 효성을 하늘이 아신 거예요.”

자식을 바쳐 아버지를 구하려던 갸륵한 정성, 이 정성에 감복한 하늘이 용삼이에게 산삼을 내린 것이다. 지금은 갈 수 없는 평안북도 회천 땅 묘향산 뒤편의 깊은 산골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후로 사람들은 용삼이가 살던 마을을 반아동(半兒洞)이라고 불렀는데, 절반은 효도하는데 바친 아들이요, 절반은 살아서 장성했다는 뜻으로 그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우봉규

작가. 〈황금사과〉로 동양문학상을 받은 뒤 〈객사〉로 월간문학상을, 〈남태강곡〉으로 삼성문학상을, 〈갈매기야 훨훨 날아라〉로 계몽사 아동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희곡 〈눈꽃〉이 한국일보사 공모 광복 50주년 기념작에 당선되면서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2001년과 2002년 서울국제공연제 공식 초청작 〈바리공주〉, 〈행복한 집〉 발표 이후, 우리나라 희곡 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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