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2년 부처님오신날이다. 불전(佛典)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 나무에는 잎과 꽃과 열매가 무성했으며, 꽃과 나비가 날고 새와 짐승들이 모두 즐거워 흥겨움에 취해 있었다고 전한다. 부처님의 탄생을 통해 사바세계에 안락과 평화가 찾아온다는 상징적 표현인 것이다. 실제로 부처님은 중생들이 영원히 누릴 수 있는 행복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도록 무수한 가르침을 설파하셨다. 부처님이 정각(正覺)을 성취하신 후 인도의 옛 바라나시 근처 녹야원(綠野苑)에서 다섯 비구에게 처음 교설(敎說)한 가르침은 이미 세계 곳곳에 활발히 전파되고 있다. 각국의 말로 번역돼 전파된 방대한 양의 경전, 그 가르침의 핵심은 다름 아닌 ‘평화’다.

평화는 어떠한 이유로든 전쟁과 살상과 폭력을 반대한다. 평화를 위해하는 모든 요소들은 생명을 가진 존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며 두려움을 안겨준다. 부처님은 그래서 평화로운 세상을 지향하셨다. 중생들에게 불보살들이 모두 발고여락(拔苦與樂)을 서원하는 것은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부처님의 애틋한 마음을 실현하려는 자비이념의 실천이었다.

때마침 불기 2562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지난 4월말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인류평화의 단초라고 평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바로 남북정상의 판문점 회담이다. 이를 계기로 북미정상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회동을 갖게 될 예정이며, 러시아·중국·일본 등이 가세해 인류의 영구적인 평화를 위한 기틀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돼 평화에 대한 지구촌의 기대를 한껏 높이고 있다.

이번 남북, 북미 정상들의 잇단 회동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핵무기의 제거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반갑기 그지없다. 그러나 변화하는 세계에서 단순히 전쟁자원의 축소 또는 비핵화만이 인류의 평화를 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병폐를 드러내는 가장 큰 것 중의 하나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인권문제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꿈꾼다. 인권은 이러한 기본적인 삶을 누리게 하는 포괄적인 권리를 말한다. 특권 계층 또는 특정인 누군가에 의해 인권이 훼손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또한 피부색·성별·종교·언어·국적에 따라서 차별을 받고 있는 경우도 쉽게 목도할 수 있다. 심지어 개인적 의견이나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감시와 압박을 받는 일도 다반사다.

부처님은 사바세계에 몸을 나투실 때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란 말로 생명 있는 모든 존재의 존엄성을 선포하셨다. 인권이란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동등한 권리의 주체가 형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인권의 실현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설파하셨던 부처님 정신을 구현하는 일로서 최고의 불사(佛事)라 할 수 있다.

환경과 생태문제의 해결도 인류평화와 직결되는 과제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는 지속적으로 환경과 생태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기후변화를 막지 못한다면 2050년 우리나라 서울에서도 폭염으로 수천 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경고나 노후한 원전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경우 인류에게 더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경고 등은 예사로이 넘길 문제가 아니다. 환경파괴를 부르는 인류의 무분별한 개발에 대해 불교계에선 이미 공업중생(共業衆生)이란 말로 공존(共存)과 상생(相生)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의 해결책 역시 생태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은 매우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새삼스레 인권과 환경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이들의 현실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고선 중생의 평화를 기약할 수 없다는 판단에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파되고 있지만 중생의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불교의 위상은 늘 제자리에서 맴돌 것이다. 새로운 시대,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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