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왕비 권유로 귀의, 초기 교단 든든한 후원자

파세나디왕이 마차를 타고 부처님을 친견하러 가고 있다. 부처님은 법륜으로 묘사돼 있다. 인도 중부 바르후트 유적에서 발견된 슝가왕조(BC 100~80)의 불탑 기둥에 새겨진 조각. 인도 캘커타 인도박물관 소장.

코살라국은 마가다국과 함께 인도 대륙의 남북을 가르는 맹주였다. 영토를 확장해가던 국왕 마하꼬살라는 남부를 차지한 경쟁자인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에게 자신의 딸 웨데히를 시집보내며 정치적 동맹을 맺었다. 그는 딸의 지참금으로 비단 산지인 카시(Kashī, 현재의 바라나시)를 빔비사라왕에게 주었다. 그리고 빔비사라왕의 누이를 자신의 아들 파세나디와 혼인시켰다.

파세나디가 왕위에 오르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이복형제들을 살육했고, 왕권강화를 위해 신하들을 죽였으며, 그 과정에서 숱한 살해 위협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국제적 감각을 지닌 명민한 왕이었다. 왕위에 오른 파세나디는 국방을 강화하고, 행정을 정비하는 등 부국강병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종교 지도자들과도 폭넓게 친분을 쌓았으며, 신흥종교에 대한 후원도 아끼지 않았다.

부처님과의 첫 만남

파세나디왕은 빔비사라왕의 누이 외에도 여러 명의 왕비가 있었다. 그중에서 파세나디왕이 가장 사랑한 여인은 아름답고 총명한 말리카였다. 일찍이 부처님께 귀의한 말리카는 틈만 나면 파세나디왕에게도 부처님께 귀의하길 권했다.

“최고의 지혜를 성취하신 분, 모든 진리를 바르게 깨달은 분을 뵐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대왕이여, 때를 놓치지 마소서.”

파세나디왕은 말리카 왕비가 말한 부처님이 이웃나라 카필라국의 왕자 출신이란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자신이 다스리는 코살라국의 속국인 카필라국 왕자 출신의 수행자를 직접 찾아간다는 건 결코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의 간청에 못 이겨 기원정사로 향했다.

파세나디왕이 도착했지만 부처님은 일어나 맞이하지 않았다. 나이도 자기 또래에 불과했다. 파세나디왕은 30대 중반에 불과한 수행자가 부처님이란 게 믿어지지 않았다. 왕은 제대로 예를 갖추지 않은 채 앉아 대화를 나눴다. 먼저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성취한 분이 맞는지를 물었고, 이 세상에 아무리 작아도 가볍게 보아선 안 되는 네 가지(왕자, 독사, 불씨, 수행자)에 대해서도 들었다. 부처님의 눈빛은 지혜로웠고, 목소리는 당당했으며, 위엄이 서려 있었다. 파세나디왕은 찾아갈 때와 달리, 예의를 갖추고 물러났다. 하지만 부처님이란 확신을 갖지는 못했다.

사랑은 근심의 씨앗인가?

그러던 어느 날, 도시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요지는 ‘사문 고타마는 이상한 궤변만 늘어놓으니, 그를 믿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어린 아들을 잃은 바라문이 부처님을 찾아간 게 발단이었다. 바라문은 기원정사를 찾아가 부처님께 자신의 가슴 찢어지는 고통을 호소했다. 그에게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사랑하고 즐겁고 기쁜 일이 있으면 따라서 근심하고 슬퍼할 일이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바라문은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하고 즐겁고 기쁜 일이 있으면 행복이 찾아와야 마땅한데, 부처님은 ‘사랑과 즐거움과 기쁨은 비탄과 눈물의 씨앗’이 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의문을 품고 돌아오던 바라문은 길가에서 도박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랑과 즐거움과 기쁨이 행복의 씨앗일까요? 근심과 슬픔의 씨앗일까요?”

“그런 바보 같은 말을 누가 했습니까? 사랑하고 즐겁고 기쁘면 당연히 행복해야지, 그걸 질문이라고 묻습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사문 고타마는 사랑과 즐거움과 기쁨이 곧 근심과 슬픔의 씨앗이라고 말하더군요.”

이런 소문은 궁전까지 퍼졌다. 소문을 들은 파세나디왕은 말리카에게 말했다.

“당신이 존경하는 사문 고타마가 이상한 말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한다는군.”

말리카는 빙긋이 웃으며 말하였다.

“대왕이여, 이 코살라국을 다른 나라 왕이 침범해 빼앗는다면 대왕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나의 부와 행복은 모두 이 나라가 있기 때문이오, 그런 일이 생긴다면 무척 괴롭겠지요.”

“대왕께서 사랑하시는 왕자와 공주가 병들어 죽는다면 대왕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그런 일은 상상하기조차 싫소.”

“대왕께서는 못난 저를 아끼고 지금까지 사랑해주셨습니다. 제가 갑자기 병들어 죽게 된다면 대왕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당신을 갑자기 잃는다면 슬픔을 가누지 못할 것이오.”

파세나디 왕과 대화를 나누던 말리카 왕비는 왕을 향해 합장을 하며 말했다.

“대왕이여, 이런 까닭에 부처님께서 사랑과 즐거움과 기쁨이 근심과 슬픔의 씨앗이 된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파세나디왕은 부처님을 친견했을 때 나누었던 대화와 방금 말리카 왕비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사문 고타마가 모든 진리를 바르게 깨달은 분, 부처님이란 걸 확신하게 되었다. 옥좌에서 내려온 파세나디왕은 계단을 내려와 기원정사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진리의 구현자 부처님을 향한 경배였다.

아들의 반란과 비참한 최후

파세나디왕은 이후 말리카 왕비와 함께 교단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그는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머무실 때면 늘 찾아뵈면서 제자로서 예를 다했다. 부처님을 스승으로 섬기며, 국가의 중대사도 의논했다. 그리고 국왕의 도리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런 파세나디왕에게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백성들을 외아들처럼 자비로운 마음으로 보살펴야 합니다. 그들을 핍박하거나 해치지 말고, 그릇된 견해를 멀리하고 올바른 길을 걸으십시오. 또한 교만하지 말고 남을 얕보지 말며, 간신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왕이라 할지라도 법을 어겨서는 안 됩니다.

대왕이여, 법[法, 진리]답지 못한 것에게 항복을 받으십시오. 맛있는 열매를 따려면 반드시 좋은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심지 않으면 열매를 딸 수 없습니다. 선행을 닦지 않으면 훗날 선과를 기대할 수 없으니, 스스로 반성하고 악행을 삼가십시오. 자기가 지은 것은 반드시 자기가 거두어야 합니다. 과보는 세상 어딜 가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처럼 파세나디왕도 자신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었다. 파세나디왕은 매제인 빔비사라왕이 아들 아자타삿투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유폐를 당한 후 죽임을 당하자, 전쟁을 일으켰다. 일진일퇴의 공방 끝에 명장 반둘라의 반격으로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카필라국 노예 출신의 왕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비두다바의 반란을 피해 마가다국 왕사성으로 향하다 최후를 맞는다.

수닷타 장자와 함께 기원정사를 세운 기타태자와 아유타국 우칭왕의 왕비가 되는 승만부인이 파세나디왕의 아들과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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