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선한 의지
엄청난 힘 발휘해
항상 생각하며 살아야

청중이 ‘세 명’이라고 할 때부터 뭔가 달랐다. 지난 3월 서울과 멀리 떨어진 요양병원에서 강연을 청해 다녀왔는데, 지금도 그곳에 머물렀던 시간은 마치 영화 속에 들어갔다가 빠져나온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강연준비를 위해 청중에 대해 물었을 때 병원장ㆍ총괄부장ㆍ사회복지사 3인이라 하여, ‘가장 적은 인원을 대상으로 한 강연내기가 있다면 일등이겠는 걸’ 생각하며 길을 떠났다.

요양병원은 처음이었지만 영화나 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익숙한 터였고 병원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일찍 도착해 병실을 둘러보면서 환자이자 노인이 대부분인 그곳의 분위기가 어둡거나 우울하지 않고 밝다는 사실에 조금씩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간호부장을 따라 병실에 들어서니 침상에 누워있던 분들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고, ‘이 분은 누구신가’ 하며 집안에 찾아온 손님처럼 호기심을 드러냈다.

직선의 복도식이 아니라 중앙의 커다란 라운지를 중심으로 병실이 둥글게 배치되어 있는 점도 배려 깊은 구조였다. 병실이 벽으로 단절되지 않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마당으로 연결된 것은 이곳의 분위기를 명랑하게 만드는 가장 큰 물리적인 요소였다.

식사시간이면 그들 모두는 병실에서 나와 라운지의 식탁에 앉아 함께 밥을 먹어, ‘환자는 누운 자리에서 식사한다.’는 선입견을 무너뜨렸다. 몸이 불편한 환자 한 명 한 명을 일으켜 식탁에 앉히고 식사를 마치면 다시 침대로 인도하기까지, 하루 세 번의 지극한 손길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병실마다 커다란 창문 바깥으로 푸른 숲과 정원이 펼쳐져 있고, 열어둔 문밖으로 라운지에 있는 벗들과 저마다 손짓하며 정겨운 소통이 이어졌다.

작은 회의실에서 있었던 두 시간 남짓의 강연에는 고정청중 3인 외에 간호사 1인, 요양병원과 함께 운영하는 실버타운의 거주자 3인이 함께하여 총 ‘일곱 명이나’ 참석하였다. 가장 열성적인 청중은 병원장이었다. 그는 서울에서 내과병원을 운영하다가 어느 날 문득 새로운 죽음문화를 만드는 요양병원을 꿈꾸며 이곳에 내려와 매일 낮 근무는 물론 밤마다 당직을 서며 살아가고 있었다. 구도자처럼 보였던 그는 자신의 책 서문에 “앞으로 나는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기로 했다.”고 적었다.

내 옆에는 정신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자포자기로 실버타운에 들어온 칠십의 여성이 앉았다. 그녀는 잠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곳 요양병원 환자들에게 피아노연주로 재능기부를 하고 꽃도 가꾸며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간다 하였다. 그녀는 원장에게 이것저것 자랑하였고, 원장은 그녀를 커다란 미소로 대하며 그저 기뻐하였다. 60대의 딸이 아버지를 돌보며 함께 실버타운에 거주하고 있는 부녀도 참석했다. 전직교장이었던 80대의 아버지는 힘들어보였지만 휠체어에 탄 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가 강연에 대한 인사도 빠뜨리지 않은 신사였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곳에서 만났던 분들의 선한 모습과 성품은 나를 부드럽게 감쌌고, 어쩌면 요양병원과 실버타운 전체가 그러한 분위기를 지닌 것처럼 느껴졌다. 돌아오는 길에 이러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생각했다. 어쩌면 개인의 확고하고 선한 의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생각을 하며 돌아오는 길은 한없이 기분 좋았고, 나도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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