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택하면 더 행복할까?’ 고민 끝에 내린 게 이 길이죠!”

국악창작그룹 ‘너나드리’는 2018년 제12회 ‘21C 한국음악프로젝트’ 대회에서 창작곡 ‘받으시오’로 장려상을 수상했다. 사진 중앙이 지향희 씨.

소리꾼 지향희(30) 씨의 신명나는 가락에 관객들의 어깨가 들썩인다. 시원하게 뽑아내는 구성진 소리는 서도민요  ·  경기민요  ·  남도민요  ·  판소리  ·  정가까지 넘나든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모든 청중이 그녀의 소리에 빠져들었다. 지난 4월 20일 창경궁 고궁음악회 ‘꽃길을 거닐다’에서 ‘사철가’를 부르고 있는 그녀를 만나 서른 인생을 들어봤다.

발레학원에서 만난 진도아리랑

열 살 무렵, 그녀는 참으로 극성맞은 아이였다. 문지방을 밟고 원숭이처럼 천장까지 기어올라 가는가하면, 몸이 무척이나 유연해 온갖 위험한 행동은 다하고 다녔다. 혈기 왕성한 어린 딸을 위해 엄마는 발레를 배우게 했다.

어느 날 발레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함께 다니던 친구가 노래 한 곡을 불러줬는데, 태어나서 처음 듣는 노래였다. 친구의 노래는 무척이나 감미로웠다. 친구를 따라 흥얼거리며 노랫가락에 그만 반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왠지 ‘내가 더 잘 부를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한창 대중가요를 듣고 따라 부를 나이였지만 친구가 부른 노래 한 대목은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 노래가 바로 진도아리랑이다. 그날부터 엄마한테 판소리 학원에 보내달라고 졸랐다. 발레학원 외에도 속셈  ·  피아노 학원 등을 다녔는데 ‘절대 후회 안 할 자신 있다.’고, ‘다른 학원 보내달란 말은 안 할 테니 판소리학원만 보내달라.’고 떼를 썼다. 결국 부모님은 그녀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열 살 때부터 판소리학원을 보내주었다.

너나드리가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 본선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는 모습. 지향희(중앙) 씨는 너나드리 활동 당시 소리를 맡았다.

“처음 부모님께 소리를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갑자기 무슨 소리냐.’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하셨어요. 뜬금없이 판소리를 배우겠다고 하니 아마 적잖이 당황하셨을 거예요. 집안에 국악을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거든요. 아마도 ‘노래를 부른 친구가 어른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게 샘이 났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래도 보내주셨어요. 그렇게 소리를 배우기 위해 소리학원을 세 군데나 돌아다니며 오디션을 봤어요. 그러다 말겠지 하셨을 텐데, 이렇게 오래 하리라고는 당시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2017년 11월 10일 서울 한국문화의 집에서 ‘너나드리’의 첫 번째 콘서트가 열렸다.(지향희 씨는 오른쪽에서 네 번째)

그때부터 부모님은 집에 친구가 놀러 오거나 절에 가서 스님을 찾아뵐 때면 소리를 하게 했다. 아이에게 소리를 시켜도 될지 판단이 서지 않았던 부모님 나름대로 주변에 자문을 구하고 싶었던 것이다.

소리에 입문한지 일 년이 지나 천태종 성남 화성사에서 주최하는 ‘법향의 밤’ 무대에 오를 기회가 생겼다. 무대와 대중이 있는 생애 첫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천태종의 한 스님이 ‘발레보다는 판소리를 시키는 게 낫겠다.’고 부모님께 확신을 줬다고 한다. 나중에 전해들은 이야기지만 잘하든 못하든 당당하게 소리를 하는 모습이 기특해보였단다.

‘너나드리’ 나와 프리랜서로

초등학교 때부터 음악은 국악이 전부였다. 판소리로 시작해 사물놀이  ·  가야금  ·  가야금병창도 배웠지만 그 중에서도 소리가 가장 좋았고, 솜씨도 뛰어났다. 추계예술대학 국악과에 입학하면서부터는 각종 소리공연에 빠짐없이 참가했다.

2017년부터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와 ‘춘풍이 온다’에 출연해 각각 30여 회 이상 공연을 이어가고 있으며, 판소리를 기반으로 하는 국악창작단체 ‘타루’에 객원소리꾼으로 참여해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그녀가 속했던 국악창작그룹 ‘너나드리’는 국악방송이 주관한 대회 ‘제12회 21C 한국음악프로젝트’에서 창작곡 ‘받으시오’로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향희 씨는 지난 2월, 그룹 ‘너나드리’를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너나드리’는 가야금  ·  거문고  ·  대금  ·  피리  ·  아쟁  ·  타악  ·  신시사이저  ·  판소리 등으로 나눠진 9명의 연주자로 구성된 그룹이에요. 인원이 많다보니 합주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해요. 그런데 마당극 · 무속음악 등 하고 싶은 것이 무척이나 많아 이 모두를 병행하다가는 모두 놓칠 것만 같았어요. 아직까지 프리랜서로 나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우리의 소리’가 좋은 그녀(오른쪽)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마당놀이극까지 넘나들며 활동 영역을 넓히고있다. 2017년 ‘심청이 온다’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프리랜서의 길이 평탄했던 건 아니다. 먼저 그룹 ‘너나드리’ 탈퇴 후 수입이 일정치 않게 되면서 어려움도 겪었다. 축제가 많은 봄  ·  가을에는 공연이 많지만, 아무래도 여름  ·  겨울에는 공연요청이 줄어든다. 공연이 없는 시기에는 재충전을 하면서 쉬는 게 가장 좋지만 시간이 많아진 만큼 생각만 많아져 ‘작년만큼 일을 할 수 있을까? 좋은 공연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에 흔들리기도 했다. 프리랜서를 선언한 후 좋은 배역을 찾으려다보니 ‘너나드리’에서 나온 이후로 마음 편하게 쉬어본 기억이 없다.

국립극장이나 예술단체에 속해 있는 친구들은 상대적으로 중압감이 덜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어느 곳에 소속되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에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은 혼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장점이다. 그래서 가급적 여러 무대에 올라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

지향희 씨는 한 해 한 해가 지나갈 때마다 공연을 하고 있다는 그 자체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 연말, 서른을 앞둔 해여서 그랬을까? 여느 때와 같이 공연을 마치고 커튼콜을 하는데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는 30회 이상의 공연을 했고, 앞으로도 30여 회가 남아 있는데도 그날은 그렇게 눈물이 쏟아졌다. 돌이켜보면 서른이 되기까지 소리 외길을 걸어오는 과정에서 느껴온 무게감과 스스로에 대한 고마움에서 비롯됐던 것 같다.

‘찾아가는 작은 공연’ 황송노인종합복지관에서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국악공연을 펼치고 있다
(2017년).

“무대에 올라 대중을 만나는 과정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에요. 경험해보지 않은 이들은 박수를 받으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를 거예요. 공연을 마친 후 관객들의 박수와 함성, 공연 잘 봤다며 건네주는 인사 한 마디는 제가 소리 외길을 꿋꿋이 걸어갈 수 있는 에너지원이에요.

즐겁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이에요. 간혹 힘들 때면 ‘나중에 내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어떤 선택을 앞두고 판단하기 어려울 때는 ‘어떤 선택을 해야 내가 더 행복할까?’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곤 하죠.”

그녀는 가끔 자신이 소리꾼이 된 이유에 대해 떠올려본다. 그리고 ‘아마도 어려서부터 부모님 손을 잡고 절에 다녔던 게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성남 화성사를 다니는 신심 돈독한 불자다. 특히 합창단장을 맡았을 만큼 음악적 재능도 뛰어났다. 그런 어머니와 함께 절에 다녔으니 자연스레 스님들의 염불소리, 목탁소리를 접하게 됐고, 그 양분이 ‘소리꾼 지향희’에 보이지 않는 영향을 주었으리란 추측이다.

어린이집 방과 후 수업으로 어린이들에게 ‘까투리
타령’을 알려주고 있다(2015년).

지금은 일이 바빠 사찰 법회에 매번 참석하지는 못하지만, 사찰에서 소리를 해야 할 기회가 생기면 열일을 제쳐두고 참여한다. 공연 전에는 손발이 떨리도록 긴장을 하지만 막상 무대에 올라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 잊게 된다는 그녀. 조만간 판소리 ‘춘향가’를 외우고 갈고 닦아서 완창회를 열 계획도 갖고 있다. 나아가 직접 쓴 시나리오로 연출한 소리극을 무대에 세우겠다는 소망도 키워가고 있다.

그녀의 꿈을 묻는 질문에 생각보다 단순한 대답이 돌아왔다. ‘앞으로도 체력이 될 때까지 꾸준하게 소리를 하는 것’이란다. 안정적인 직장보다는 자신의 개성을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개척하고, 스스로 만족하는 성공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그녀의 꿈이 이뤄지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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