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기나 놀림 아닌, 중생 근기 맞춘 배려

국가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佛畵匠) 기능보유자 석정 스님(1928~2012)의 불화.

치기나 놀림 아닌,
중생 근기 맞춘 배려

관세음보살님의 고향은 남인도 땅 보타락가산입니다. ‘보타락가(potalaka)’는 ‘하얀 꽃’이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을 소리 내고 보니, 티베트의 포탈라궁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지금은 인도 다람살라에 계시는 달라이라마께서 머물던 곳이지요. 달라이라마는 관세음보살의 화신(化身)으로 여겨지고 있고, 지금도 티베트 사람들은 굳게 믿고 있습니다.

먼 나라를 다닐 것도 없이 우리나라 강원도 땅에도 포탈라카, 즉 보타락가산이 있습니다. 낙산사가 그곳입니다. 의상 대사가 목욕재계하고, 7일 만에 자신의 좌구(방석)를 새벽 물 위에 띄웠더니 불교의 수호신들이 굴속으로 스님을 안내해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하늘을 우러러 예를 올려 수정염주 한 꾸러미를 얻었고, 의상 스님이 이것을 받아 굴에서 나왔을 때 동해의 용이 또다시 여의주 한 알을 바쳤다고 하지요. 의상 스님이 이것까지 받아서 다시 7일 동안 재계하고 머물렀는데 이때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진짜’ 관세음보살님이셨습니다. 왜 ‘진짜’라고 굳이 강조하느냐고요? <삼국유사>에 ‘진신(眞身)’이라고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이 멀리 인도 땅에서 이곳 한반도로 자신의 아바타[화신]를 보내준 것도 아니고, 꿈속에서 모습을 보인 것도 아닌 진짜 관세음보살님이 의상 스님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의상 스님은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한 그곳에 절을 지었으니 그곳이 바로 낙산사입니다. 어쩌면 이런 인연담을 모르는 분은 거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낙산사 관세음보살님을 떠올릴 때면 저에게는 의상 스님보다 원효 스님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의상 스님에게는 그토록 쉽게(라고 표현하면 죄송하지만) 나타나신 관세음보살님이 원효 스님에게는 왜 그리 야박하셨던 것일까요?

낙산사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흰 옷을 입은 여인이 벼를 베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려고 방방곡곡을 두루 다니다 이곳까지 오시게 된 원효 스님은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이렇게 농담을 건넵니다.

“허, 거기서 일하고 계신 처자! 내게 벼를 좀 주시지 않으시려오?”

스님의 농담에 벼를 베고 있던 흰 옷의 처자는 덤덤히 대답합니다.

“아직 벼가 익지 않았습니다.”

익은 벼를 베면서도 원효 스님에게는 벼가 아직 익지 않았다는군요. 원효 스님은 조금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가던 길을 계속 갑니다.

가다보니 어느 다리 밑에 이르렀을 때 한 여인이 생리대를 빨고 있었지요. 스님이 이번에는 물 한 모금을 청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 두어 걸음만 올라가면 맑고 깨끗한 물을 뜰 수도 있는데 굳이 자신의 생리대를 빨고 헹구던, 그 물을 떠서 올립니다. 과연 누가 그 물을 마실 수 있을까요? 분명 원효 스님은 더럽고 비위가 상했을 것입니다. 스님은 받은 물을 쫙 뿌려서 버린 뒤에 스스로 맑은 물을 찾아 한 사발 마셨지요.

그런데 이런 스님의 모습을 지켜보기라도 한 듯 가까운 곳 소나무 위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이렇게 지저귑니다.

“제호(醍醐)는 아직 스님과 인연이 없군요.”

‘제호’는 우유로 만든 훌륭한 음식 가운데 하나로, 여기에선 관세음보살님과의 친견 인연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파랑새는 그렇게 말한 뒤 포로롱 날아가 버렸고, 그 자리엔 신발 한 짝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지요.

원효 스님은 아차! 싶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낙산사로 황급히 달려가 봤더니 관세음보살상 아래에 나머지 신발 한 짝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만났던 흰 옷 입고 벼 베던 여인, 생리대를 빨던 여인, 그리고 파랑새는 전부 관세음보살님이었다는 말인가요?

흰 옷은 관세음보살님의 상징입니다. 중국 당송시대 이후 민간에서는 관세음보살님을 언제나 흰 옷을 입고 하얀 연꽃 위에 자리하고 계신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렇다면 원효 스님은 왜 그 여인이 관세음보살인 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요? 설마 그런 위대한 분이 벼를 베고 있으랴 싶었을 테고, 농가의 아낙처럼 평범한 여인이 관세음보살일 리가 없으리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품고 있던 까닭에 대상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합니다. 아직 지혜로운 눈을 갖고 있지 않았기에, 관세음보살님은 그걸 콕 집어서 벼가 아직 익지 않아서 나눠줄 수 없다고 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다리 아래에서 빨래를 하던 여인은 또 어떤가요? 빨래란 더러운 것을 깨끗한 것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더러운 것이 바로 여인의 천 생리대입니다. 생리 그 자체는 더럽지 않습니다. 그건 여성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또 생리를 해야 임신을 하고 생명을 낳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이론상으로만 그렇게 받아들일 뿐, 실제로 그 생리혈이 묻은 천을 보면 여성들도 살짝 인상을 찌푸립니다.

원효 스님이 질색하며 그 물을 버린 행동은 지극히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저 역시도 그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관세음보살님의 시험임을 역시나 원효 스님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나는 남자, 너는 여자.’

‘나는 수행자, 너는 아직 욕정이 한창인 세속 여인.’

〈삽화=필몽 최은진〉

원효 스님에게는 이렇게 아직까지 남녀의 구분, 그리고 성자와 범부의 차별이 깊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여인이 떠서 올린 그 물에서 생리혈이 보였을 테고, 그 물은 남성수행자에게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에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휙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원효 스님이 그토록 갈구하던 진리의 세계는 어디였을까요? 저 높은 곳, 저 맑고 깨끗한 곳, 한 점 티끌도 없고 고결해서 세속의 농촌 아낙이나 빨래하는 여인은 도저히 엄두도 내지 못할 그런 곳이 진리의 세계, 부처님의 경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런 곳이 부처님의 경지라면, 그래서 지금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땅, 이 먼지 나는 대지를 부정한다면 과연 어느 곳에 단단히 두 발을 딛고 서서 저 높은 곳을 향할 수 있을까요?

맑고 청정한 곳이나 꿈꾸고 있고, 진짜 현실인 이 세계를 그저 희롱이나 하고 더럽다고 치부해버리는 사람을 향해 ‘제호 스님’이라 놀린 파랑새의 지저귐이 바로 이런 원효 스님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지적한 것이지요. 최고만 찾아다니는 스님, 그냥 그렇게 사시라고요.

그제야 아차 싶었던 원효 스님에게 그래도 관세음보살님은 신발 한 짝은 남겨두셨네요. 지금 그대가 눈앞에 관세음보살을 두고도 보지 못하고 있으니 뒤늦게라도 알아차리라는 자비심에서 그런 것인가 봅니다.

‘아아,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서둘러 낙산사로 달려가 관세음보살님의 자리인 굴속으로 들어가지만 거센 풍랑이 그 길마저 막아서 끝내 원효 스님은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지 못한 채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지요. 아니, 이미 친견했건만 친견한 줄 몰랐으니, 그렇다면 원효 스님은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한 걸까요? 하지 못한 걸까요?

관세음보살님은 대체 왜 이런 장난을 쳤을까요? 그것도 남성수행자에게 여성으로 나타나서 말이지요. 어쩌면 당시 원효 스님 수행 이력에 알게 모르게 자리한 마장(魔障)이 바로 이런 이성에 대한 욕망과 깨끗하고 더럽다는 분별심이 아니었을까요? 그걸 제대로 딱 짚어 보여 그런 분별심을 버리게 하려면 그 누구도 아닌 여성의 몸이 가장 효과적이었을 테지요.

이 세상 모든 이들을 부처님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관세음보살님은 이렇게 몸을 바꿔서 여인으로도 나타나고, 파랑새로도 나타납니다. 치기어린 장난이 아니라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근기에 맞춰 나타난 화신이요, 응신(應身)인 것이지요. 놀림을 당했다고 발끈 화를 낸다면 그는 아직도 공부를 한참 더해야 할 것이요, 뒤늦게나마 알아차린다면 그 또한 공부가 한 뼘 깊어지는 계기가 되겠지요.

지금 당신을 찾아온 가장 불쾌한 사람이 있다면 혹시 아나요? 관세음보살님의 33화신 가운데 한 분일지 말입니다.

이미령

동국대학교에서 불교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경전번역가이자 불교대학 전임강사, 북 칼럼니스트이다. 현재 BBS불교방송 ‘멋진 오후 이미령입니다’를 진행 중이다. 저서로 <붓다 한 말씀>·<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이미령의 명작산책> 등이 있다. 또 <직지>·<대당서역기> 등 많은 번역서가 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