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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천태종 중국 태산-청도 순례기(하)

기사승인 2019.06.04  09:5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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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종 도용 종정예하를 비롯해 총무원장 문덕 스님, 종의회의장 도원 스님, 감사원장 진덕 스님 등 약 40여 명의 스님들은 4월 15일부터 20일까지 5박 6일간 중국 산동성 일원으로 떠나 공자 사당과 태산 - 청도로 이어지는 쪽으로 순례를 다녀왔다. 종의회의원 갈웅 스님이 보내온 순례기를 2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적산법화원 대웅보전에서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순례단. 법화원은 장보고와 신라인들이 법화신앙을 하던 도량이다.

강태공 사당 참례

나흘째 아침, 일행은 강태공(姜太公) 사당 측에 문을 일찍 열어달라고 미리 연락을 해놓았다. 숙소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강태공 사당은 겉으로 보기에는 소박했다. 면적도 그다지 넓지 않았고, 건물도 화려하거나 크지 않아서 작은 사당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경내는 잘 정돈되어 있어 깔끔했다. 경내에 들어서면 중앙에 사당이 있고, 좌우로 건물이 배치돼 있는 구조다.

사당 입구에 들어서자 먼저 강태공(BC 1211~BC 1072)의 셋째 아들인 구목공(丘穆公)을 모신 구조전(丘祖殿)이 보인다. 흰 눈썹과 수염을 한 구목공의 상은 관직의 표시인지 보관을 쓰고, 오른손으로 수염을 만지고 있었다. 왼손으로는 관직명인 듯한 무언가를 받쳐 들고 있었다. 붉은 색의 몸에 꽉 끼는 상의, 붉은 색 아래로 푸른색과 밤색으로 된 체크무늬 하의는 마치 사찰의 단청과 같은 문양을 하고 있었다. 또 어깨 양옆으로는 노란색 천이 바닥까지 늘어져 있는 의상을 하고 있었다.

구조전 뒤쪽에 강태공을 모신 사당이 있다. 전체적으로 구조전과 비슷했지만, 강태공이 쓰고 있는 보관의 형태나 색깔은 달랐다. 흰 수염은 구목공과 비슷했지만, 의상은 완전히 달랐다. 어깨에서 양쪽으로 흘러내린 청색 계열의 겉옷은 몸의 중앙을 보다 많이 덮고 있었으며, 옷 안쪽에는 보일 듯 말 듯한 황금색 옷을 입고 있었다.(순례를 다녀온 후 찾아본 자료에는 황금색 겉옷이 입혀져 있었는데, 당시 그 위에 청색 겉옷을 덧입혔던 것 같다.) 또 가슴 앞에 초록색을 띤 명패 형태의 표식을 들고 있었고, 겉옷 안쪽 하의는 붉은 색과 초록색 바탕에 아(亞)자형의 단순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구조전이 있는 오른쪽에는 작은 유물관이 있는데 강태공의 후손들에 대한 기록물이 보관돼 있다. 액자 속의 사진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후손들이 와서 남긴 흔적이다. 사진 중에는 진주 강 씨도 있고, 최 씨도 있었으며,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진도 있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글씨도 남겼는데, ‘先祖의 높은 뜻을 받드오리다. 2000년 6월 18일. 大韓民國 第13代 大統領 盧泰愚’라고 써 놓았다. 강태공으로 인해 파생된 성씨(姓氏)는 40여 개나 된다고 한다.

강태공은 139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중국의 고대 왕조인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건국한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70세까지 벼슬도 하지 않은 채 낚시만 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가난에 못 견딘 부인이 집을 나가버렸다. 그러나 70세에 주나라 문왕(文王)을 만나 인생의 대전환점을 맞는다. 강태공을 만나 대화를 해 본 문왕은 그의 인물됨을 단박에 알아보고, 즉시 스승으로 모셨다.

강태공이 주나라 건국에 결정적인 공적을 쌓아 문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제후국이 제(齊)나라다. 그 후에도 주나라의 재상을 지내는데, 그는 문왕의 아들인 무왕의 장인이 되기도 한다. 강태공이 제나라의 왕(제후)이 되어 임지로 가는 길에 도망갔던 아내가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지난날의 잘못을 용서하고 자신을 받아 달라고 애원했다. 그런 부인에게 강태공은 물 한 그릇을 떠 오게 한 후 물을 땅바닥에 쏟고 다시 담아보라고 말했다. 물을 다시 담을 수 없음을 알게 된 부인은 더 이상 매달리지 않고 사라졌다. 이런 일화로 볼 때 강태공은 무인으로서의 기질이 있는 강직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이 일화로 생긴 말이 ‘복수불반분(覆水不反盆)’ 즉, ‘엎어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이다.

강태공은 병법에도 능했다. 그가 지은 〈육도삼략(六韜三略)〉은 후에 〈손자병법〉을 저술할 때 참고를 했을 정도로 이름난 병법서다. 은나라의 72만 대군을 고작 4만5천의 군사로 무찌른 그는 은나라를 패망시키고, 주나라를 건국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종교적으로는 도교적인 색채가 강한데, 나중에 신선이 되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500여년 뒤에 태어난 공자의 유가학파에 밀려 조금은 존경의 대상에서 멀어지게 된 듯도 하다.

강태공 사당을 참례한 후 5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이 ‘팔선과해 풍경구’다. 늦은 점심공양을 하고 구경에 나섰다. 처음에는 ‘역사적인 유적지도 아닌 곳에 왜 왔을까?’하는 의문을 가졌으나 관람하면서 조금씩 감탄을 자아내게 됐다. 이곳은 바닷가인데, 일행은 몇 대의 전동차에 나눠 타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동하다가 정차를 하고, 다시 타기를 반복했다. 수십만 평의 넓은 땅에 바닷물을 끌어들인 후 맑은 물이 넘실대는 곳곳에 크고 작은 건물을 세웠는데 그 규모가 정말로 대단했다. 전시 중인 유물도 다양하고 많았다. 나무 화석과 뱀 화석을 비롯해 수정과 옥 등 온갖 진귀한 물건과 조각품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입구격인 전각에는 유불선의 신을 모셨다. 석가모니 부처님 상에 이어 유교의 공자와 도교의 노자의 상을 차례로 참배했다. 다른 건물에는 불교의 관음보살상도 모셔져 있었는데 그 화려함이 놀라웠다. 관람을 하면서 느낀 점은 유불선을 모셨다고는 하나 전체적으로 도교적 색채가 강하다는 점이었다. 그곳에서 3시간 반 정도를 둘러본 후 숙소로 돌아왔다.

장보고의 적산법화원

닷새째, 아침 일찍 숙소를 출발한 일행은 3시간 정도를 달려 산동성 영성시 석도진(적산)에 도착했다. 장보고가 세운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을 보기 위해서다. 장보고는 일찍이 친구인 정년(鄭年)과 함께 당나라에 들어와 승마와 창술을 익혀 군인이 되었다. 이후 크게 출세하여 ‘무령군중소장’이라는 직책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신라인들이 당나라에 많이 잡혀 와서 노예로 팔리는 비참한 모습을 보고, 당나라의 모든 관직을 놓고 신라로 돌아와 흥덕왕 3년(828)에 왕에게 허락을 받아 1만의 군사를 얻어 완도에 청해진을 건설하고 해상왕 장보고가 된다.

장보고는 군사력과 항해술, 그리고 뛰어난 무역으로 중국과 일본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제해권(制海權)을 쥐고 크게 성공한다. 그리고 산동반도의 바닷가인 이곳에 법화원이라는 사찰을 건립하고 법화신앙을 하게 된다. 당시 신라의 많은 스님들이 당나라로 건너와 유학을 했는데, 장보고의 활약에 큰 도움을 받게 된다. 일본 천태종의 엔닌[圓仁] 스님도 장보고의 도움을 받아 당나라에 유학할 때 험난한 뱃길에서 무사히 유학을 마치고 돌아갈 수 있었다. 그 고마움으로 교토에 있는 일본 천태종의 본산인 연력사에 장보고를 ‘적산신(赤山神)’으로 모시고 추앙하였다.

이런 이야기를 떠올리며 법화원에 도착 하니 감개가 무량함을 느끼게 된다. 천 년 전 장보고의 활략상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적산법화원을 참배할 때 먼저 대웅보전에서 종정예하와 종단 스님들은 〈반야심경〉을 독경했다. 그리고 별로 크지 않은 법당 내부를 둘러보았는데, 벽에는 우리나라 같이 단을 만들어 탱화를 조성하는 게 아닌, 벽화로 그림을 그려 놓은 게 특이했다. 법당 앞에는 중국 특유의 큰 향로가 놓여 있었고, 왼쪽에는 관음전이 오른쪽에는 지장전이 건립돼 있었다.

관음전 옆 마당에는 돌로 세운 제법 큰 비석이 있었는데 그 비석은 한국의 장씨(張氏)들이 이곳에 와서 건립했다고 한다. 그 뒤쪽으로 가면 전각이 몇 채 더 있는데, 접견실에서 사찰 주지스님과 스님 몇 분이 종정예하를 접견하고 차담을 나누었다.

차담 후에 다시 사찰을 둘러보는데 곳곳에 장보고의 흔적이 즐비했다. 1983년도에 사찰이 발견돼 이후 복원을 해오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장보고를 ‘적산명신(赤山明神)’으로 모신 동상을 보기 위해 전동차에 나눠 타고 위쪽으로 향했다. 장보고의 동상은 산 위 높은 곳에 엄청난 크기로 모셔져 있었다.

아래에서부터 돌계단을 만들어 그 동상까지 올라올 수 있도록 설치를 하였으며, 양쪽 계단의 중앙에 중국 특유의 용을 돌로 조각하여 장엄함을 더했다. 동상이 있는 위치에 올라오니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장보고가 자신이 활동하던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동상을 세운 것이다. 이러한 모습만 보아도 이곳 사람들이 장보고를 얼마나 귀하게 모시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장보고 동상이 있는 곳이 이 사찰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기도 했지만, 주변의 기암괴석 산봉우리들이 동상을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이 동상에서는 바닷가의 수많은 건물들이 내려다보인다.

장보고 동상에서 다시 전동차로 이동하여 아래로 내려와 장보고기념관을 관람했는데, 그 건물 앞에 무장을 한 장보고상이 늠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기념관 입구에는 한국청소년연맹과 일붕선교종에서 다녀간 흔적을 안내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적산법화원을 참배하고 일행은 버스에 올라 4시간이 넘게 이동해 늦은 시간에 청도에 도착하였다.

청도시의 발전상

엿새째는 청도의 발전상을 둘러보고 점심공양을 한 후 귀국길에 오를 예정이었다. 청도시는 100여 년 전부터 도시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패한 뒤, 이곳은 1897년 독일에 조차(租借)되었는데 독일은 이후 17년간 청도시 개발의 밑그림을 그렸다. 당시에 하수구를 조성하였는데 하수구 높이를 2m가 넘도록 설계하여 지금까지도 사용하는데 손색이 없을 정도로 견고하게 지었다. 심지어 그 당시 설치한 모터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 기술자들의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가 하면, 몇 년 전에 당시 하수구를 시공한 독일기업에서 청도시에 연락을 해왔는데 “이제는 우리가 보장한 기한인 100년이 넘어 우리가 책임을 질 수 없다. 이제부터는 청도시에서 관리를 하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독일인들의 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담이지만 현재 세계 명차의 70%가 독일제라고 하는데 괜히 생긴 결과가 아니라는 게 간접적으로 증명되는 셈이다.

한편 청도를 비롯한 산동성 전체에는 한국기업이 1만5천개나 진출해 있다고 한다. 지리적 위치도 고려되었겠지만, 청도와 산동성이 기업하기 좋은 도시인 게 분명해 보인다.

일행은 청도시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를 향했는데 그곳은 바다를 접해 있었다. 그 바다에서 2008년 올림픽 때 요트경기가 열렸다고 했다. 바다에 접한 큰 건물에서 각국 원수들이 참석한 국제환경정상회의가 열렸다고도 했다.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큰 건물에 이동통신사를 비롯한 중국의 유명 회사들이 모여 있다고 한다. 바다 쪽에서 큰 빌딩 숲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가 사진에서 보는 미국 뉴욕 맨해튼의 건물군을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곳은 바닷가이므로 석로인해수욕장이 유명하다. 여름 성수기에는 35만 명의 사람들이 해수욕장으로 몰려든다고 한다.

또한 해수욕장 근처에서 청도 맥주축제가 열리는데, 그 기간 동안 이 일대는 교통이 완전히 막혀 꼼짝을 못할 정도로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고 한다.

5.4광장을 둘러 본 일행은 10여 분 거리에 있는 청도올림픽공원(세기공원)으로 갔다. 올림픽공원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기념해 세웠는데, 공원 중앙에 물이 흐르도록 했고, 그 양쪽으로 넓은 광장을 조성해 많은 사람들이 편안히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또 광장 길을 따라 올림픽 종목별로 메달을 딴 선수들의 조각상을 세워 놓았다. 공원 입구에는 많은 중국인들이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사교춤을 추고 있었다.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면 숲이 있고, 숲에는 오솔길이 있어서 많은 시민들이 휴식과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숲 주변에는 호수도 있는데 늘어진 능수버들과 잘 어울렸다. 작은 배를 타고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일행은 1시간 가량 산책을 한 후 청도공항을 통해 귀국길에 올랐다.

적산법화원에 들어서며 순례단을 대표해 도용 종정예하께서 중국불교식 의례에 맞춰 합장하고 있다.
순례단이 적산법화원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적산법화원에는 장보고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팔선과해 풍경구의 아름다운 모습.

천태종 종의회의원 갈웅 스님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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