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의 세계로 초월하려면 무위의 비워둠이 전제돼야

부활절 미사 중인 프란치스코 대성당.

서사와 영성이 쌓인 언덕 위 성채

우리 일행은 움브리아 주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아시시(Assisi)로 향했다. 1,290m에 이르는 수바시오 산이 움브리아의 너른 평원에 발을 뻗어 이룬 424m의 언덕을 중심으로 형성된 아시시에는 로마 시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1,000여 년에 걸친 유적들이 수많은 서사를 간직한 채 우뚝 서 있다. 유럽 가톨릭의 수호성인인 프란치스코(Sanctus Franciscus Assisiensis)와 그 첫 여제자였던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Sancta Clara Assisiensis)가 이곳에서 탄생해 복음을 실천하고 기적을 체험했으며, 수많은 이들이 프란치스코회와 성 클라라 수녀회에 입회하여 두 성인을 따라 이 공간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서사와 영성(靈性)을 서리서리 채웠다. 아득한 신비는 안개처럼 모호할 뿐인데, 교황과 황제, 시민과 귀족은 서로 충돌해 숱한 사건을 빚어내며 흰빛 도화지에 알록달록 채색했다.

수평선까지 이어진 움브리아 평원을 지나 도착한 아시시에는 돌집들이 수직의 성채를 이룬 채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서쪽 끝에 프란치스코 대성당이 육중하게 자리하고 있었고, 동쪽으로 가면서 야고보 대성당, 성 베드로 성당, 성 스테파노 성당, 성녀 클라라 대성당 등의 담과 지붕, 종탑이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수바시오 산에서 캐낸 석회석 섞인 돌로 만들어진 덕분에 이 건물들은 천 년의 시간을 붙들어 얽어맨 채 서 있었다. 프란치스코 성인 또한 영혼은 천국에 있겠지만 육신은 프란치스코 대성당 지하에 머물러 있고, 클라라 성녀도 클라라 대성당 지하에 잠자고 있다. 잠시 서사와 기억을 정박시키고 있던 나그네를 태양이 알람을 울려 깨운다. 연분홍빛이 감도는 갈색의 건물은 마침 지평선으로 향하는 햇빛을 안고 시나브로 금빛으로 물들며 시간의 흐름을 복원하고는 나그네에게 길을 재촉하였다.

부활절 전야여서 수도원에 숙소 예약을 하지 못하고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작은 호텔은 정갈했다. 창문을 여니 마당의 나무위에선 이름 모를 새가 노래하며 낯선 이를 반겨주었다. 저녁을 먹고 골목길을 돌았다. 집집마다 화분이나 작은 정원을 꾸며 꽃을 키우고 있었다. 돌과 꽃은 직선과 곡선, 단색과 다채로운 빛깔, 차가움과 따스함, 정지와 움직임, 광물성과 생명성의 조화를 구성하고 있었다.

예수님 부활의 의미

우리는 프란치스코 대성당에서 열리는 부활절 미사에 참석했다. 주로 이태리 사람들이었지만, 우리처럼 날짜를 맞춰온 외국인이 더해져 성당은 서있기가 힘들 정도로 인산인해였다. 그럼에도 미사는 숭고미의 절정이었다. 대영광송(大榮光頌)을 들으며 발밑 어딘가에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는 생각을 하니 짧은 순간이었지만 전율이 일었다. 이 공간만이 갖는 위상, 의미, 역사, 서사 등 장소성과 더불어 원본만이 가질 수 있는 아우라 때문이리라. 어둠 속에서 묵상을 하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프란치스코 대성당의 회랑.

부끄러운 기억부터 떠오른다. 필자에게 하느님은 영(靈)이 아니라 육(肉)으로 다가왔다. 서울 변두리인 신길동에 살던 초등학교 시절, 기독교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빵을 준다는 유혹에 끌려 동네교회 부활절 예배에 참석한 것이 예수님과 첫 만남이었다. 궁핍했던 시절, 교회에서 부활절 선물로 계란과 함께 준 곰보빵은 일상에서 먹을 수 있는 모든 먹을거리를 넘어섰고, 달고나·눈깔사탕·풀빵은 물론 가끔 혼례의 답례품으로 맛보는 일본식 찹쌀떡에서도 느낄 수 없는, ‘서양’과 ‘기독교’와 ‘귀족’을 버무린 ‘딴 세상의 음식’이었다. 당시 공책이나 연필을 타기 위해 성경을 암송했고, 뜻도 잘 모른 채 성가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때 외운 구절이 떠올랐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사도신경〉)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한복음〉)

부활! 재생을 모티프로 한 신화와 설화, 의례가 거의 전 세계에 분포하는 것을 바탕으로 인류학·기호학·신화학을 결합해 규명하면, 부활의 기원은 계절의 순환, 식물의 재생, 일식과 월식, 뱀의 탈피, 나비의 우화(羽化)의 은유일 것이다. 구석기 인류는 죽은 것 같던 겨울나무에 연둣빛 새싹이 돋고, 일식으로 온통 어두웠던 세상이 다시 밝아지고, 뱀이 허물을 벗고 새 몸을 비틀고, 흉측한 벌레가 아름다운 나비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사람 또한 그리 다시 태어난다는 유추를 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대성당의 종탑.

최근에 터키의 두 유적 발굴로 세계학계의 정설 세 가지가 무너졌다. 곧, 신석기 때가 아니라 이미 구석기 후반에 농경혁명이 시작됐고, 농경보다 종교와 신전건축이 앞섰으며, 최초의 농경사회는 신분사회가 아니라 평등한 공동체였다는 점이다. 두 문화를 창조한 주체들은 모두 부활의 의식을 하고 있었다. 1만 2,000년 전에 인류 최초의 신전을 세운 터키의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에서는 두개골을 떼어내는 장례의식을 했다.(Gesualdo Busacca, 〈Places of Encounter: Relational Ontologies, Animal Depiction and Ritual Performance at Göbekli Tepe〉)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앞서 기원 전 9,400년경부터 농경과 목축, 장거리 교역을 한 터키의 차탈회유크(Çatalhöyük) 유적을 보면, 이곳 주민은 집의 크기와 재료, 소유물까지 똑같은 평등한 공동체를 오랫동안 유지했는데, 그들을 하나로 뭉치는 동인(動因)은 조상의 소환이었다. 그들은 거주하는 집의 마루 아래에 머리와 신체를 분리해 묻었으며, 조상의 머리를 꺼내 만지면서 그와 그의 행적을 기억했다.(Ian Hodder, 〈More on history houses at Çatalhöyük: a response to Carleton〉 등) 이런 의식과 사상이 교역을 통해 이 지역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유대의 고대 히브리인에게 전해지고 예수님의 부활 신앙의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부활의 여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충돌한다. 제자들이 기만한 것이란 기만설, 환시를 착각한 것이라는 환시설, 신화적 표현이라는 신화설은 모두 부활을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부활의 부정은 그리스도 신앙의 전면 부정이다.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은 증인이 있고 성경에 구체적으로 기록된 역사적 사건이자 신앙의 토대다. “불트만의 표현대로 나사렛에서 온 역사적 예수가 부활 이후에는 신앙의 그리스도가 되었다.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인생의 영원한 소망의 근거이며(베드로전),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의 원동력이며(로마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새로운 존재의 윤리적 삶의 기초이다.(로마서)”(윤철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신학적 의미〉)

예수님의 부활은 하느님을 알게 해 주었다. 누구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부활함으로써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임을 증명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가 범한 죄를 대신 속죄하고, 부활의 기적을 통해 하느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는 동시에 우리도 그처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소망과 신앙을 구체적으로 재현했으며, 종말이 왔을 때 그를 믿은 자들은 그처럼 구원받을 수 있음을 보증했다. “예수의 부활 사건은 종말론적 부활의 선취이며 우리의 미래적 부활의 예표이다.”(윤철호, 같은 글) 무엇보다도 예수님처럼 사는 삶을 실천할 때 예수님의 부활은 현존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사랑과 영성을 믿고 가난한 자를 섬기고 지극한 사랑을 베풀면, 그 순간 그의 몸 안에서 예수님이 부활해 그를 영혼의 불사체로 거듭나게 하며, 종말의 순간에도 부활의 영을 입게 하는 것이다.

비움 뒤 채워지는 무위의 하느님

CEFID 옥상에서 바라본 움브리아 평원과 아시시 언덕의 건물들.

아시시에서는 1986년 이후로 세계 종교지도자들이 비정기적으로 모여 인류와 종교의 평화에 대해 대화하고 함께 순례하고 메시지를 발표한다. 교황청에서 주도하지만 아시시 안에서 이 행사의 보조역할 하는 곳이 CEFID(Centro Francescano Internazionale per il Dialogo, 종교 간 대화를 위한 국제 프란치스코회 센터)다. 이곳에서 ‘영성과 깨달음에 대한 동서양의 대화’라는 주제로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센터장인 실베스트로 베얀(Silvestro Bejan) 신부의 환영사에 이어 교황청 라떼라노 대학의 미카엘 푸스(Michael Fuss) 교수, 필자, 베얀 신부, 이태리의 미륵불교문화재단 연구소장 마리아 안젤라 활라(Maria Angela Falà) 교수, 원광대의 조성훈 교수의 차례로 발표했다.

후스 교수는 ‘종교들의 글로벌화와 대화: 비 그리스도인에 대한 선언문, 우리 시대의 현실’이라는 제목으로 이웃종교에 대한 가톨릭의 견해, 이웃종교의 구원 가능성, 이웃종교와 대화의 방법과 일곱 가지 원칙에 대해 기술했다. 베얀 신부는 ‘성 프란체스코 및 작은 형제들의 삶 안에서의 수덕’이라는 제목으로 프란체스코 수도회 성직자들이 갖추어야 할 청빈·금욕·침묵·고독·단식·일 등의 수덕(修德)에 대해 발표했다. 활라 교수는 ‘달마와 로고스’라는 제목으로 달마의 특성과 방편에 대해 발표했다. 조성훈 교수는 ‘원불교의 영성과 깨달음 : 은혜를 깨닫는 걷기’라는 제목으로 일원상의 진리를 토대로 원불교의 영성과 깨달음에 대해 걷기명상을 중심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활발하고 웅숭깊은 토론과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후스 교수는 부활축일 관계로 참석하지 못했고, 이현숙 수녀가 대독했다. 활라 교수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불교를 이해하고 있었고, 베얀 신부는 불교에 그리 관심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실망스러웠다.

필자는 ‘깨달음과 영성에 대한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 공통점, 차이, 융합’이라는 제목으로 불교와 기독교에서 인간의 본성과 초월, 영성과 깨달음에 대한 공통점과 차이를 논하고 양자의 융합을 모색했다.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단적으로 말해 불교가 연기론에서 이 세계를 바라본다면, 기독교는 주로 실체론과 이분법으로 바라본다. 또 불교에서는 신의 존재를 설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불교와 기독교 모두 인간의 한계와 불완전성을 인식하고 초월을 지향한다. 초월을 하려면 그 전제로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탐욕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하는 점도, 불성(佛性)과 하느님의 영이 있기에 인간의 초월이 가능한 점도 유사하다.

여래장(如來藏)처럼 기독교에도 인간 영혼의 깊은 곳에 ‘하느님의 씨’(요한1서 3:9)가 있다. 영성은 하느님과 내적관계를 맺는 ‘존재의 영성’, 외적으로 구현하는 ‘실천의 영성’, 육체적 고행을 하면서 이상을 추구하는 ‘금욕적 영성’, 신비체험이 어우러진 것이다. 하느님은 모든 존재에게 이미 영과 에너지로 스며있다. 하느님이 당신을 본떠서 인간을 창조한 것이므로 인간에게도 영이 있다. 다만, 너울로 상징되는 편견·망상·어리석음·아집·탐욕 등에 가려서 이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울을 벗어버리면 거울을 보듯 하느님의 영광이 얼굴에 비추어지고 자신의 깊은 내면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해 지금의 나로부터 완전히 초월해 무아적 구원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왜냐하면 영으로서 하느님이 언제 어디든 존재하고, 인간이 주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무명(無明)과 탐욕을 없애면 바로 불성(佛性)을 보고 깨달음에 이르듯이.

선(禪)의 논리로 기독교를 보면, 하느님은 인간의 언어와 의식, 지성으로 다가갈 수 없는 신비이자 불가해성이다. 그것은 오로지 존재의 유한함을 자각하고 이를 초월할 때만 체험할 수 있는 신비다. 우리는 “정화(via purgativa), 조명(via illuminativa), 일치(via unitiva)의 길을 거쳐서 신적 본성과 신비적 일치(unio mystica)에 이를 수 있다.”(신승환, 〈현대철학에서 영성 이해의 가능성〉) 이 방편을 통해 우리는 일체의 언어나 분별이 사라진 하느님을 만날 수 있으며, 신비의 한 자락에라도 스치듯 다가갈 수 있다.

거룩함과 비속함, 초월과 내재, 무한과 유한, 영원과 순간 또한 대립자들이 서로 얽히며 서로를 보완하는 대대(待對)의 관계를 갖는다. 곧 부처님과 하느님은 자비와 사랑,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과 자기비하의 섬김으로 인간에게 내려오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인 인간이 모든 탐욕과 죄를 초월해 무한을 지향하면 자기 안에서 부처님이나 하느님을 발견해 하늘나라에 오르거나 열반에 이를 수 있다.

기독교에서 하느님의 개념은 새로운 사상의 수혈을 받아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유일신’이나 ‘초월적 절대자’에서 ‘상호존재의 근거’(Paul Knitter)나 ‘관계성의 원천과 힘’(Paul Tillich) 등으로 변화했다. 이제 동양사상과 만나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다석 유영모(多夕 柳永模)가 제시한 ‘없이 계신 하느님’을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의 영성사상, 도가 사상과 종합해 ‘무위의 하느님’이란 새로운 개념으로 제시한다. 하느님은 모든 것에 이미 스며 있는 영으로 (공기처럼) 없는 것 같지만 하지 않는 것이 없는 존재다. “하느님은 없이 계시는 분이다. 몬[물질]으로는 없고 얼[성령]과 빔[虛空]으로 계시기 때문에 없이 계신다. 그러나 모든 물질을 내고 거두신다. …… 하느님은 모든 물질을 이룬 얼이요 모든 물질을 담은 빔이다. 모든 물질을 거둘 빔이다.”(박영호 편, 〈다석 유영모 어록〉)

도가 철학에서 무위(無爲)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비워둠[虛]을 만드는 것이다. 강은 흐르며 이온 작용, 미생물의 분해, 식물의 흡수 등으로 자연정화가 일어난다. 오폐수가 하루에 99톤이 버려졌는데 강물이 흐르면서 자연정화를 할 수 있는 양이 하루 100톤이라면, 거기 1톤의 ‘비워둠’이 존재한다. 이 1톤의 비워둠이 있는 한 그렇게 오폐수를 버리더라도 강은 자연정화를 해서 늘 맑음을 유지할 수 있다. 반대로 단 한 방울이라도 오염물질이 100톤을 넘으면 배출되는 즉시 강물은 급속도로 오염된다. 비워둠이 있는 한 자연(自然)은 이름 그대로 스스로 그렇게 존재하고 작동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음에도 모든 것을 한다. 그래서 무위란 ‘비워둠[虛]’을 만들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하느님도 마찬가지다. 하느님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비움이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모든 탐욕과 어리석음으로부터, 모든 의지로부터, 나로부터 초탈하여 비울 때 그 안으로 영으로서 하느님이 들어온다. 그러는 순간 나는 영성을 획득하고 무한의 세계로 초월한다. 부처님도 그러하여서 어디에나 계시지 않은 곳이 없지만, 비운 곳과 자비를 발하거나 발할 곳에만 나투신다.

돌과 꽃이 어우러진 아시시의 골목길.

이 도 흠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현재 지순협 대안대학 이사장, 정의평화불교연대 상임대표, 한국언어문화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한국기호학회 회장·〈불교평론〉 편집위원장·한국학연구소장·〈문학과 경계〉 주간을 역임했다. 원효학술상·유심학술상수상한 바 있다. 저서로 〈인류의 위기에 대한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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