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 전병준>

어부 수동 이야기

“거룩하신 부처님 저의 죄를 용서하소서.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거룩하신 부처님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짙푸른 아리수 강변의 오두막.

언제부터인가 늙으신 한 어머니가 정화수 앞에서 그렇게 빌고 빌었다. 그때 아리수 물길의 원천인 서해에 살던 용왕의 막내공주는 바다와 합쳐지는 아리수의 물길을 거슬러 올라와서 끝없이 펼쳐진 모랫벌의 고움에 감탄을 연발하고 있었다. 막내공주는 서해 용왕의 일곱 번째 딸이었다. 일곱 공주 가운데에서도 제일 어리광쟁이였기에 용왕 내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어쩌면 인간이 사는 마을들은 저리도 아름다울까?’ 험한 인간 세상에 나가지 말라는 부왕의 말도 잊고 공주는 강기슭을 거닐었다. 물가를 중심으로 산이 있고, 그 산 곳곳에 낮게 자리 잡은 초가마을들, 공주는 넋을 잃고 그 아름다운 모습에 취해 있었다. 그러다가 어린 공주는 큰 바위 하나를 발견하고 그곳에 누워 바다 밑에서는 볼 수 없는 햇빛에 취해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한편 날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비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 어부 수동은 그물을 메고 나루터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항시 무거웠다. 어머니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부처님을 향해 기도를 하면서도 수동에게 강가로 나가라고 채근했다. 수동은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병인데 저리 어물만을 찾을까? 더구나 항상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따르는 분이 그 많은 어물을 다 어떻게 하셨을까? 그러나 그걸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 즉시로 돌아누워 전보다 심하게 앓았던 것이다.

사실 수동이 날마다 잉어를 잡지 않았다면 그는 전장으로 끌려갈 판이었다. 마을에는 장정이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다. 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남자들은 전쟁터로 끌려갔다. 유독 수동만 어머니를 봉양한다는 이유로 영장을 미룰 수 있었다. 거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결코 관청에서 수동의 딱한 처지를 이해해 주어서가 아니었다. 수동의 어머니가 수동이 잡아온 고기 전부를 관청의 웃어른들에게 상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아프지 않았다. 아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녀는 전장에 나가면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수동이 아리수로 나가면 그때 어물들을 처리했다. 관청 사람들은 수동의 어머니에게 굳은 약속을 강요했다.

“누구에게라도 비밀이 새어 나가면 아들은 끝이야.”

“아들도 몰라야 해.”

그날부터 어머니는 기도를 마치면 일부러 앓아 눕기 시작했다.

“오늘은 자라가 먹고 싶다.”

“오늘은 잉어가 먹고 싶다.”

어머니 때문에 매일 물고기를 잡던 어느 날.

수동은 마침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곰바위 곁을 지나다가 잠들어 있는 한 여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토록 아름답고 정결한 여인은 이 아리수가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동은 발자국소리를 죽여 가며 공주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때 공주가 가만히 눈을 떴다. 그리고 수동과 눈이 마주치자 놀라 벌떡 일어났다.

“누구십니까?”

옷깃을 여미며 당돌한 공주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대는 누구십니까? 혹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아니십니까?”

수동은 여인이 입고 있는 옷은 일찍이 구경한 적이 없는 옷이었다. 수동은 여인이 선녀라고 생각했다. 그 옷은 어렸을 때 들은, 궁중에 사는 임금님의 딸이나 선녀가 입는 옷과 같은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저는 선녀가 아니옵니다. 도령님!”

“나야 도령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가난한 총각 어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는 ‘총각’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자신의 행색을 보아 혹시 저쪽에서 혼인을 한 남정네로 알까하는 노파심에서였다. 그런 자신이 부끄러워 수동은 여전히 얼굴을 들지 못한 채 말을 했다. 그저 황홀하고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어부라면 무슨 고기를 잡습니까?”

“무슨 고기라니요. 어부가 따로 잡는 고기가 있겠습니까? 오늘은 오래 전부터 앓고 있는 어머니께서 잉어가 잡숫고 싶다고 하시기에 이제 막 물가로 나가려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수동은 뜻하지 않은 여인을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잉어를 잡으러 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까맣게 잊고 하루해를 넘기고 말았다. 물론 다른 근심 걱정도 그의 마음속에서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자 공주는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강기슭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집이 아리수 아래쪽인 모양이라고 수동은 짐작했다. 너무나 아쉬웠지만 수동은 다음 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빈 손으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수동아, 잉어는?”

그물을 내려놓는 소리를 들은 어머니가 방 안에서 ‘잉어를 잡아왔는냐?’고 묻는 소리였다. 수동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어머니? 오늘은 영 안 잡히네요.”

수동은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했다.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수동은 물고기가 안중에 없었다.

“이렇게 허기가 지도록 병든 어미를 굶기느냐? 늙고 병든 어미가 보기 싫다면 오늘부터 나는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겠다.”

수동은 짜증이 났다.

“그 많은 물고기를 다 드셨으면 이제 일어날 때도 되셨구만, 괜스레 생트집이에요. 부처님께는 매일 기도하면서, 부끄럽지도 않아요?”

“아~!”

어머니가 울먹이며 탄식했지만 공주에게 빠져있던 수동은 오로지 공주만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단 둘이서만 산 속으로 들어간다면…….’ 수동의 상상력은 밤새 계속되었다. 물론 그 다음날도 빈손이었다.

어머니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얼굴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갔다. 그렇다고 수동의 눈에 어머니의 창백한 얼굴이 보일 리 없었다. 그 날도 공주와의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빈손으로 돌아온 수동이 방문을 열었을 때 어머니가 외쳤다.

“물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강물 속으로라도 들어가거라!”

수동은 그 말을 듣고 뛰쳐나갔다.

사정은 공주도 마찬가지였다. 위험한 인간 세상에 나가지 말라는 부왕의 영(令)을 어긴 죄로 공주는 용궁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공주 또한 수동을 만나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공주는 부지런히 바닷물을 헤치고 육지를 향해 아리수를 거슬러 올라왔다.

언제나 수동과 만나는 그 모래벌판의 바위를 찾아갔다. 그러나 한낮이 기울어도 수동은 나타나지 않았다. 해가 지자 날씨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천둥이 치고 바람이 불었다. 강물은 거세게 날뛰고 있었다. 무서운 폭풍은 밤새 아리수를 뒤집어놓고 말았다. 그날 밤, 용궁으로 가는 길이 끊긴 공주는 돌아가지 못하고 아리수 기슭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집을 뛰쳐나갔던 수동은 밤이 이슥해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밤, 수동의 어머니는 수동을 기다리다가 결국 늙은 몸을 이끌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나루 이곳저곳으로 아들을 찾아다녔다.

“수동아!”

“수동아!”

강가에서 헤매고 있을 아들을 걱정한 어머니는 천둥번개 속에서 아리수 기슭을 계속 헤매었다.

“아가, 잉어 필요 없다. 자라도 필요 없다.”

“아악!”

미친 듯 강기슭을 헤매던 어머니는 그만 발을 헛디뎌 아리수의 급한 물살에 휩쓸리고 말았다. 억센 아리수가 수동의 어머니를 삼켜 버린 것이다.

이튿날, 하늘은 어느새 맑아 있었다. 배가 산산조각 나서 나뭇조각 하나에 몸을 의지해 간신히 죽을 고비를 넘긴 수동은 날이 밝아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수동은 방문을 열어젖혔다

그런데 어머니가 없었다. 어머니가 폭풍우 속에서 밤새 자신을 찾아다니다 실종됐다는 걸 알게 된 수동은 마당 한편에 떠 있는 정화수 그릇을 붙안고 목 놓아 울었다. 그리고 이웃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모든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그 많은 고기를 어떻게 처분했는지, 어째서 관청에서 자신만은 징집하지 않는 호의를 베풀었는지를.

며칠 후, 수동은 글 모르는 어머니가 보물처럼 여기던 낡은 〈법화경〉과 정화수 그릇을 바랑에 넣고 깊은 산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수동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날마다 어머니가 외던 불경 구절을 독송하고 있었다.

자비로우신 부처님, 불기 2564년 부처님 오신 날은 아들을 구하기 위해 천둥과 벼락 속에서 목숨을 잃은 수동의 어머니를 위해서 광명을 비추어주소서! 또한 사랑에 눈이 멀어 세상을 살피지 못한 수동과 공주를 위해서도 광명을 비추소서! 그리고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세상 모든 생명들에게도 지혜와 자비의 광명을 비추어주소서!

우봉규 
​〈황금사과〉로 동양문학상을 받은 뒤 〈객사〉로 월간문학상을, 〈남태강곡〉으로 삼성문학상을, 〈갈매기야 훨훨 날아라〉로 계몽사 아동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희곡 〈눈꽃〉이 한국일보사 공모 광복 50주년 기념작에 당선되면서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2001년과 2002년 서울국제공연제 공식 초청작 〈바리공주〉, 〈행복한 집〉 발표 이후, 우리나라 희곡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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