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4년 부처님오신날을 찬탄하는 법요식이 전국 사찰에서 봉행된다. 부처님은 평화와 자유를 내세운 영원한 행복의 길을 우리에게 일러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 가르침으로 우리는 무명에서 벗어나 해탈로 가는 길을 알게 되었다. 이는 어두운 동굴에서 찬란한 빛의 세계로 나아감이며, 고통과 절망의 족쇄를 풀고 대자유를 구가할 수 있는 처방이었다. 부처님은 중생에 대한 연민을 품고 45년 맨발의 전법을 통해 이러한 가르침을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을 ‘모든 중생의 자애로운 어버이’라 부르고,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스승’이라 일컫는다. 부처님 오신 기쁨이 전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으로 전해지길 기대한다.

불교에선 부처님의 법을 펴서 세상을 밝히는 행위를 ‘전등(傳燈)’이라 부른다. ‘빛’은 구원의 뜻을 품고 있다. 따라서 ‘전등’은 세세생생 단절되지 않고 구원의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다만 불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신의(神意) 종교’와는 뜻을 달리한다. 신의 가피 구원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업식(業識)에 의해 스스로를 구원하기 때문이다. 즉,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따라 행과 불행이 나뉜다는 뜻이다.

불교계는 올해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부처님오신날 법요식을 연기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특히 이태원클럽 발 확진자가 늘어나자 연등회를 전격 취소하며 감염 재확산을 방지하고자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이는 어떠한 위기상황에서도 국민과 함께 고통을 나누고 극복해 나가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불교계의 결정에 국민들은 일제히 환영과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현대사회에서 종교계가 이기주의에 빠진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실제 초기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특정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확산돼 국민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그들은 코로나 초비상 상황임에도 집회를 고집했다. 심지어 코로나를 신의 힘으로 물리칠 수 있다는 잘못된 신앙 행태마저 보여줬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듯 위기를 극복하고 치유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은 국민 스스로 철저히 방역지침을 준수하고, 협조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질병은 신에게 기도한다고 퇴치되는 게 아니고, 주술로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의지가 뒷받침될 때 치유하고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가미니경(伽彌尼經)〉에는 이런 교훈이 잘 담겨 있다. 부처님이 가미니라는 마을을 방문했을 때 촌장이 “어떤 종교인들은 기도를 하면 병든 사람도 고칠 수 있고 악한 일을 한 사람도 천상에 태어나게 할 수 있게 한다는데 당신도 그런 능력이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부처님은 이렇게 반문했다. “촌장이여, 가령 저 호수에 어떤 사람이 돌을 던졌다고 합시다. 많은 사람이 호수 주변에 모여 합장하고 ‘돌멩이여, 떠올라라’ 하고 기도를 했을 때 과연 돌멩이가 떠오르겠습니까?” 촌장은 ‘그럴 수 없다.’고 답했다. 부처님이 다시 물었다. “촌장이여, 저 호수에 어떤 사람이 기름을 부었다고 합시다. 사람들이 모여서 합장하고 기름이 물속으로 가라앉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기름이 가라앉겠습니까?” 촌장은 역시 ‘그렇게 될 수 없다.’고 답했다. 이에 부처님은 “촌장이여, 그처럼 기도를 한다고 악한 일을 한 사람이 천상에 태어나거나 착한 일을 한 사람이 지옥에 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바른 생각입니다.”

불교계가 부처님오신날 법요식을 한 달 연기하고 연등회를 취소하는 등 어렵지만 현명한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위기 극복방법이 이미 부처님 가르침에 잘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부처님의 가르침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할 나위없는 지침(指針)이란 걸 새삼 깨닫게 해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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