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제 6·7대 원로회의 의장을 지낸 종산 스님의 생전 모습. <사진=조계종 총무원>

구례 화엄사에 분향소, 27일 영결·다비식

조계종 제6·7대 원로회의 의장을 지낸 구례 화엄사 조실 혜광당(慧光堂) 종산(宗山) 스님이 6월 23일 오전 5시 30분 경 청주 보살사 직지선원에서 법랍 72년, 세수 97세로 원적했다.

스님은 ‘忽然惺時在夢中(홀연성시재몽중) 今日頓覺羞恥麽(금일돈각수치마) 了知柱草心印華(요지주초심인화) 不拘廉恥又欲見(불구염치우욕견) - 문득 깨어보니 이번에도 잠깐 졸았구나. 부끄럽게도 왜 지금에서만 아는가! 다행히 기둥에 난 풀도 사람마음 꽃인걸 알아서 염치없지만 또 보고 싶겠네!’라는 임종게를 남겼다.

스님의 분향소는 구례 화엄사 화엄원에 마련됐으며, 6월 27일 오전 10시 화엄사에서 영결식 후 화엄사 연화대에서 다비식을 엄수한다. 문의 061)783-7600

종산 스님은 1924년 10월 전남 담양에서 출생했으며, 속명은 김동진이다. 스님의 법호는 혜광, 법명은 종산이다. 스님은 광주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절친한 벗이 병고로 세상을 일찍 떠나자 육신을 치료하는 의사보다는 마음을 고치는 의사가 되기를 결심했다. 1949년 2월 자운사에서 도광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1954년 3월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53년 전남 강진 백련사 만덕선원에서 전강 대선사를 모시고 수선안거한 이후 43년간 대흥사, 통도사, 해인사, 범어사, 동화사, 망월사, 천축사 무문관, 용주사 중앙선원 등 전국 제방선원에서 수행정진했다. 대강백 용봉 스님, 당대 선지식으로 추앙받은 전강 스님, 동산 스님, 경봉 스님, 춘성 스님, 금봉 스님, 청담 스님 등 한국불교 최고의 선지식들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함께 수행정진했다.

천축사 무문관에서 6년 수행 끝에 깨달음을 이루고 ‘合掌以爲花(합장이위화) 身爲供養具(신위공양구) 誠心眞實相(성심진실상) 讚嘆香煙覆(찬탄향연복) - 두 손 모아 합장으로써 꽃을 만들고, 청정한 몸으로 공양구를 삼나이다. 성심을 다 받치는 진실한 모습으로, 찬탄의 향기를 가득 채우겠나이다.’라는 오도송을 읊었다.

해인사에서 정진하던 1958년 어느 날, 조실 금봉 스님과 선문답을 나누고 ‘혜광(慧光)’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이후 일평생을 ‘여하시부모미생전 본래면목(如何是父母未生前 本來面目)’, 즉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라는 화두를 챙기며 수행정진했다. 또 후학들에게 ‘계율을 머리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먼저 내 허물을 보고 참회하고,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한다. 계율은 목숨처럼 여겨야 한다.’고 가르쳤다.

종산 스님은 1988년 중앙종회 임시의장, 법제분과위원장을 역임했다. 1990년 보살사 직지선원 조실, 2000년 4월 천은사 방장선원 조실, 2002년 10월 구산선문 태안사 원각선원 조실, 2012년 1월 화엄사 선등선원 조실로 추대됐다. 1997년 12월 조계종 최고 의결기구인 원로회의 의원으로 선출된 후 2004년 해인사에서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다. 2004년 4월 제6대 원로회의 의장, 2007년 12월 제7대 원로회의 의장으로 추대돼 조계종단의 위계질서를 세우고 승풍을 진작하는 등 조계종 발전에 일조했다.

조계종 제 6·7대 원로회의 의장을 지낸 종산 스님. 대종사 법게 품수 후 촬영한 사진. <사진=조계종 총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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