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모를 질병·자연재해 시대
‘시절인연’ 교훈 되새기며
통찰로 불성 자각해야

한여름 땡볕 아래 귓전을 울리던 정겨운 매미소리도 들리지 않고, 풀벌레소리와 귀뚜라미 소리만이 깊어가는 가을밤은 세월의 무상함을 전하는 듯하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가을 들녘에는 추수하는 농부들의 손길이 바쁘다. 하지만 산사태와 수해로 피해를 입은 적지 않은 사람들은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하고 근심걱정에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낼 듯하다.

코로나 시대는 우리네 일상을 참으로 많이도 바꾸어 놓았다. 예전 같으면 수재의연금 모금이나 구원의 봉사 등으로 대중매체나 종교계가 상당히 시끌벅적할 법한데 그저 잠잠하다. 이는 장기간 지속되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민생경제나 민심을 흔들고 있는 탓도 있을 것이다.

가끔 취약계층이나 빈곤층을 대상으로 여러 종단이나 지역 사찰에서 자비의 나눔을 실천하는 소식들이 간간이 들려와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진다. 우리네 인생이란 살다보면 예상치도 않게 극히 어려운 상황과 맞닥뜨리기 마련이다. 이런 때일수록 담대한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불가(佛家)에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무릇 인연이 무르익어야 일이 성사되기 마련’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사실 이 말은 〈열반경〉이나 〈벽암록〉 등에서 ‘불성을 보려면 시절인연을 관하라.’라는 표현에서 유래한다. 중국 명나라 때 항주의 운서산에 기거했던 승려 운서주굉(雲棲株宏, 1535~1615)이 조사들의 법어를 모아서 편찬한 〈선관객진(禪關策進)〉에도 소개되어 있다.

이처럼 시절인연이란 가장 알맞은 때나 일이 성사되기에 가장 적절한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불가에서는 수행자가 견성(見性)을 하거나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부단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좋은 스승과의 만남도 대단히 중요하게 본다.

스승과 제자의 가장 이상적인 관계는 병아리가 부화되는 에피소드로 묘사되는데, 이를 ‘줄탁동시(啐啄同時)’라고 한다. 예컨대 어미닭이 21일 정도 정성껏 알을 품고 있다 보면 병아리가 부화되는데, 새끼가 알 안에서 부리로 껍질을 깨고[啐] 어미닭이 동시에 밖에서 쪼아주는 것[啄]을 말한다.

이른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추구하는 일이나 어떤 일이든지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 스승과의 좋은 만남도 그렇고, 여러 상황이나 때가 잘 맞아야 한다. 그야말로 시절인연이 잘 맞아야 한다. 모든 일은 흥망성쇠가 있다. 특히 인생사란 더더욱 그렇다. 자신이 하는 일이나 뜻한 바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노력한다고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중국고사에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듯이, 갑작스레 불어 닥친 고난과 역경의 굴레에서 용기를 잃지 않고 먼 길을 돌아갈 줄 알아야 한다. 겨우내 날씨가 추우면 추울수록 추위를 이겨내고 봄에 피는 매화의 향기가 더욱 진하듯이, 그 어느 때보다 시절인연에 담긴 기다림의 지혜와 통찰이 필요한 때이다. 끝 모를 코로나 시대와 자연재해의 후유증이 여전한 요즈음, 시절인연에 담긴 교훈을 다시금 가슴에 되새기며 회광반조(廻光返照)의 통찰로 자신의 내면의 밝은 빛[佛性]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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