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불교설화(268호)

송첸감뽀 왕은 1000여 년 전 티베트 왕국을 다스리던 왕이었다. 그는 다섯 왕비와 함께 수도 라싸가 내려다보이는 붉은 언덕 위, 암석을 쌓아 구축한 성에서 살았다. 당시 거대한 제국을 이루었던 티베트는 중국과의 평화 유지가 긴요했고, 그래서 송첸 왕은 중국 황제에게 딸을 요구했다.

중국 공주와의 혼인을 요청하기 위해 송첸 왕은 명석한 두뇌에 빈틈없는 솜씨를 지닌 가르빠 정승을 사신으로 보냈고, 황제는 그 요구를 거절할 형편이 아니었다. 티베트 기갑부대가 이미 중국 황궁의 담 밖에 진을 치고 있어 황제를 두렵게 했다. 황제는 할 수 없이 딸 하나를 송첸에게 보내기로 약속하는 대신, 티베트 사신이 네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된다는 조건을 붙였다. “우리나라 풍습이 그렇다.”며 덧붙이기를 “사신이 지면 목숨을 잃을 것이나 이기면 딸을 데려가도록 하게나. 언짢아하진 말라.”고 했다.

가르빠는 도전을 받아들였고, 황제는 자문단과 역관, 고관들을 소집했다. “백발이 성성한 가르빠에게 1000 마리의 양을 주고 각 양마다 그 어미를 맞추라고 하십시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양마다 어미를 찾아주겠습니까?”

2000 마리의 양이 가르빠 앞에 운반되어 놓였다. 가르빠는 즉시 그 양들을 흩어놓았다. 그러자 양은 습관대로 어미를 찾아내 어미 옆에 붙어 섰다.

그렇게 가르빠는 첫 번째 과제를 통과했다. 그러자 황제는 궁리했다. “이 티베트인은 동물을 다룰 줄 아는군. 이젠 그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황실 문제를 내리라.”

황제는 경호대에게 일러 밤에 가르빠를 이리저리 왕궁 안으로 데리고 다니다가 마지막에 어디에 도착했는지 모르게 하여 재우라고 했다. 그들은 수 천 개의 방 중 하나에 가르빠를 재우고 과제를 설명해주었다. “오늘 밤엔 여기서 주무십시오. 내일은 눈을 가리고 저희가 궁궐 마당으로 모시고 갈 것입니다. 거기서 이 방을 찾아오시면 두 번째 과제를 통과하는 것입니다.”

가르빠는 미소를 지으며 경호원들을 보냈다. 아침이 오자 그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단지 코로 냄새를 맡아 그는 밤을 지낸 방으로 되돌아왔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황제를 좌절시켰다.

“이 가르빠를 어찌한다?” 황제는 손톱이 길고 보석이 박힌 손을 쥐어짜며 외쳤다. “놈이 내 딸을 달라는데 어찌하면 막을 수 있는 말이냐?”

“비단과 보석”이라고 수염이 허연 늙은 자문관이 황제의 귀에 속삭였다. 마법사도 거들었다. “그 티베트인이 작고하신 대비마마가 지니셨던 구멍을 낼 수 없는 붉은 산호 구슬을 꿰어 목걸이를 만들 수 있는지 보십시다. 지금까지 아무도 그 작은 구슬들에 비단실을 꿴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두 실패했지요.”

황제의 검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 자신도 이 과제를 해보았지만 불가능했고, 황제의 형제 자매들도 다 마찬가지로 실패했었다. 가르빠는 곧바로 과제를 시작했다. 기지를 발휘하여 개미 한 마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는 비단실을 개미허리에 묶고 꿀을 사용하여 개미가 멋진 산호의 내밀한 속으로 기어들어가도록 유도했다. 개미를 따라 비단실도 딸려가서 이윽고 비단실 전부가 산호를 통과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세 번째 과제도 통과했다.

황제는 탄식했다. 그러자 후궁 하나가 좋은 수가 있다고 했다. “가르빠에게 왕의 부인이 될 사람을 직접 고르게 하십시오. 1000명의 비슷한 처녀를 골라 세워놓고 그 중 진짜 공주를 고르라고 하십시오.”

황제는 동의했고, 장안에서 만 명의 처녀를 동원하여 그 중 공주 역할을 할 1000명을 선별했다. 가르빠는 황실 연회장에 앉아 그 처녀들을 보면서 공주를 골라야 했다.

“문성공주를 오늘은 방에 있으라고 하세요.”라고 공주의 어머니가 말했다. “티베트인이 알아차릴 리가 없어요. 군중 속에서 아무나 골라 데려가게 하세요. 모든 장안 처녀가 오늘은 다 공주잖아요.”

하지만 황제는 성난 눈으로 부인을 바라보며 소리 질렀다. “어리석은 소리! 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오. 오늘 문성을 꼭 군중 속에 세우도록 하시오.”

수줍은 처녀들이 열을 지어 천천히 우아하고 장엄하게 가르빠 앞을 지나갔고, 그는 처녀들을 하나씩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벌 두 마리가 날아오더니 그 중 한 처녀의 머리 장식 위를 맴돌았다. 겨울이었기에 모든 처녀들이 인조 꽃을 달고 있으리라는 것은 당연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리 황제라 해도 어디서 한 겨울에 갑자기 수 천 개의 신선한 꽃송이를 구하겠는가? 오직 진짜 공주만이 그토록 아름다운 아이리스와 백합을 새까만 머리채에 장식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황제의 딸을 알아냈다.

이렇게 해서 가르빠는 모든 과제를 통과하여 시험에 합격했다. 당당하게 공주를 모시고 고국으로 돌아갔고, 송첸 왕은 쾌히 문성공주를 아내로 맞이했다. 품성이 선했던 공주는 티베트에 누에를 도입하고 비단 짜는 법을 가르쳤다. 그래서 왕은 거친 가죽 망토를 벗어버리고 우아한 비단 용포를 입게 되었다. 또한 문성공주가 지참금으로 가져온 불상을 통해 송첸 왕이 불교로 귀의했고, 그로 인해 좀 더 평화로운 정책을 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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